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딕 브루너의 일러스트展

멀리 떨어진 미술관 찾아가기

▲ 시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딕 브루너의 일러스트전.
▲ 시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딕 브루너의 일러스트전.

딕 브루너의 일러스트전 / ~7월13일 / 영천 시안미술관

이름난 현대미술관들은 대개 시민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왕래가 잦은 도심에 자리잡고 있다. 언제 어느때나 가까이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오히려 시내를 벗어나 주위의 경관이 주는 매력으로 방문자들을 사로잡는 곳도 많다. 뉴욕 맨해튼 북단의 클로이스터 뮤지엄은 허드슨강을 내려다보는 요새 같은 언덕 위에, 샌프란시스코 서단의 레종 도뇌르 미술관은 태평양에 임해 있는 링컨공원의 빼어난 풍광에 둘러싸여 세속의 일상과 아예 거리를 둔 듯하다. 차에서 내려 걷는 기분도 좋고 무엇보다 발품을 판 보람은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인데, 멀찌감치 미술관의 정면이 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맘이 설레기 시작한다. 런던 교외 넓은 영국정원 속에 있는 캔우드 하우스도 주변 풍광뿐 아니라 렘브란트의 56세작 자화상 한 점이 그곳에 있어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우리 주위에서는 영천에 있는 시안 미술관이 한번 마음내기 어렵지만(아직 버스를 이용해보진 않았지만 자가용이 아니고서는 가기 힘들다는 점에서) 찾는 이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구불구불 농촌 들녘을 헤매다가 멀찍이 눈에 들어오는 이 미술관의 첫 외관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름은 시안(청록색)이지만 폐교를 리모델링해서 얹은 경사지붕의 빛바랜 주홍색이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을 이고 있는 모습은 특히 그 색감이 멋있다. 미의 순례자를 감동시킬만한 소장품이 없다는 것도 미술관으로선 아쉬운 점이지만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회가 그 매력을 대신한다. 지금 네덜란드 동화작가 딕 브루너의 일러스트전이 볼만하다. 입구에서부터 그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미피 그림들로 구성된 장식물들이 관람자들을 안내한다. 1층 전시장의 내부는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옵셋 프린트로 제작되어 연대별로 진열되어 있다.

브루너의 매력은 명확한 윤곽선과 평면적인 색채에 의한 간결한 형태이다. 제한된 색과 단순화된 형상은 어린이를 위한 깜찍한 동화이면서도 어른의 마음을 동심으로 사로잡는다. 역으로 어른을 위한 동화이면서 어린이의 눈에도 매력적인 파울 클레의 그림이 연상된다. 진지하면서도 신랄하기까지 한 클레의 명랑성과 비교하면 브루너의 유머는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순수함과 고요함의 세상이다. 작가는 레제의 평면적인 색채와 형태에서 자극 받았고 마티스의 색종이 오리기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한다. 동시에 몬드리안의 명확한 선과 단순한 몇 개의 색채로만 구성된 그림에서 받은 감동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배경을 어린이 관객들에게 들려주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 이 전시의 콘셉트이기도 하다. 관람료가 좀 부담스럽지만 비영리 목적의 미술관들이 겪는 재정난을 얘기하면 할 말이 없다. 좋은 형태가 좋은 심성을 기른다는 말이 떠오르는 전시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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