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상경(上京)인 탓인지 적응에 애를 먹었습니다. 경제와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저 자신이나 공직사회는 민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정장식(58) 중앙공무원교육원장. 포항중학교와 경북대 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12회)했다. 38세에 경남 거창군수가 되었고, 대통령 비서실에서 4년간, 국무총리실에서 6년간 일했다.
상주시장과 두차례에 걸친 민선 포항시장을 지낸 뒤 2006년 4월 한나라당 경북지사 경선전에서 고배를 마신 뒤 대구대에서 1년여 겸임교수로 강단에도 섰다. 그리고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3월 10일 현직에 취임했다.
"잠깐의 백수 시기(도지사 경선전 낙선 이후 포항 환여동 바닷가 집에서 2개월 동안 칩거)를 보낸 뒤 대구대에서 강의를 맡게 됐을 때 '아!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이구나'라는 사실을 절감했다"면서 "요즘은 오로지 업무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취임 100일을 맞았다는 사실도 비서들이 얘기해줘서 알았다고도 했다. 그래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현 정부의 핵심 행정구호가, 적어도 정 원장 자신에게는 가장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에 스스로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또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이라는 직책을 염두에 둔 듯 만나는 분들마다 공무원들에 대한 비판부터 쏟아내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동의할 부분도 많지만 수용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면서 "공무원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만큼 따뜻한 격려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고 했다.
8년간 포항시장을 지냈고 경북지사에도 도전장을 냈던 그에게 '서울서 보는 경북과 포항이 어떤지' 물었다. 답변은 에둘러 갔지만 행간에서 그 뜻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K-1이나 프라이드·UFC 같은 이종격투기장을 연상합니다. 상대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몰아붙입니다. 마치 전장 같고 강자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일하는 것 같습니다. 점잖게 앉아 있다가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할 것 같다는 짐작이, 이제는 확신으로 다가옵니다."
최근 중앙공무원교육원에는 수강생들이 넘쳐나고 있다. 막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행시합격자들을 비롯해 고삐를 다잡아보겠다고 들어오는 중앙부처 국장급과 갓 승진한 5·7급 초급간부들도 많고 말레이시아·튀니지 등에서 '선진 한국'을 배우려는 외국의 고위 공직자들도 많은데 이들에게 수시로 특강하는 것도 정 원장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다.
강연에서 그는 '베스트(Best)가 되자'고 강조한다. "애니콜이나 박지성·박세리, 포스코 같은 월드베스트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고 모두가 다 알아서 대우해주고 값을 쳐주지 않습니까. 각자의 위치에서 베스트가 되려고 노력한다면 자리는 저절로 굳어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주 1회 이상 교보문고에 나가 책을 사고, 구입한 책은 반드시 읽어냅니다."
차관급인 중앙공무원교육원장에게는 관사가 지원되지 않는다. 발령을 받은 뒤, 딸이 살고 있는 서울 신촌 근처 언덕배기(그는 산 중턱이라고 했지만)에 28평짜리 아파트를 전세얻어 생활하고 있다. "처음에는 살림이라도 거들어 주자는 생각에서 애들 집 근처에 집을 얻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우리가 딸 부부(장녀 승아씨는 세브란스병원 안과의사이고, 치과의사인 사위는 소록도에서 군복무를 대신해 근무 중)에게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한다"고 셋집살이 소감을 짧게 털어놨다.
그의 이력에서 보듯 이제 '정장식'과 '선거'는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 이야기를 TK(대구경북)로 옮겨 "정 원장을 두고 2년 뒤(지방자치 선거), 4년 뒤(총선)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을 걸쳐 보았다.
"포항에 여든의 노모가 계시고, 친구들이 있어서 자주 오고 싶은데 일정이 빠듯하기도 하지만 괜한 억척을 낳을까 염려가 돼서 한달에 한두번 정도 '그냥 다녀갑니다'"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일·모레 일도 예상하기 어려운데 그렇게 먼 장래의 일을 어떻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느냐"며 "그냥 오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그냥'이라는 말이 참 많이도 나왔다. 이 뒤로도 그는 '그냥 오늘 최선 다한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포항시장을 그만두고 나올 때 이임사에서 이런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쯤 포항시민들이 정장식이가 그래도 안목 있는 행정을 폈다' 이런 평가는 받고 싶은 거지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나중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고 '정장식 원장이 있을 때 중앙공무원교육원 참 잘 했다'…이런 평가만 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과욕입니까?"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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