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스페인의 공격 리듬 앞에서 거스 히딩크의 주문은 통하지 않았다. 27일 오전 3시45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에서 열린 2008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8) 준결승전에서 스페인이 돌풍의 러시아를 3대0으로 잠재웠다.
스페인은 1964년 대회 우승 이후 44년만에 결승에 진출, 기적이 사라진 무대에서 앙리 들로네 컵을 놓고 독일과 전통의 강호끼리 우승을 다투게 됐다. 히딩크 러시아 대표팀 감독은 조별 리그에서 대패했던 스페인 벽에 다시 막혀 이전의 메이저 대회에서 이어진 '4강 징크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날 경기에서 러시아는 4-1-3-2 전형으로 나서 느린 템포로 공격 속도를 죽이며 4-4-2 전형을 갖춘 스페인의 빠르고 경쾌한 공격을 흐트리려 애썼다. 이 시도는 전반전에 먹혀 들었다. 페르난도 토레스가 페널티 구역안에서 재빠른 슛 타임으로 두 차례 슛을 날렸지만 위력이 없었고 다비드 비야는 페널티 구역 바깥으로 밀려나가 중거리 슛을 날렸을 뿐이었다.
러시아는 공격의 핵 안드레이 아르샤빈이 스페인 수비진에 묶여 공격 빈도가 많지는 않았지만 전반 종반 로만 파블류첸코의 날카로운 슛이 이어지며 스페인을 위협했다. 스페인은 설상가상으로 다비드 비야가 부상을 당해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투입해야만 했다.
후반 들어 파브레가스의 때이른 투입이 스페인에게 득이 됐음이 증명됐다. 비야와의 투 톱 체제에서 토레스가 원 톱으로 나서고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파브레가스가 좌위 윙 포워드로 나서 4-3-3 전형으로 바꾼 스페인의 공격이 살아났다. 후반 5분 이니에스타가 페널티 구역 좌측 라인에서 슛같은 패스를 빠르게 날리자 2선에서 침투한 사비 에르난데스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발을 갖다 대 굳게 잠겨 있던 러시아의 골문을 열었다.
히딩크 감독은 이고르 셈쇼프와 이반 사엔코를 빼고 디니야르 빌랴레치노프와 드미트리 시체프를 교체 투입, 공격을 강화하며 반격을 지시했다. 그러나 후반 28분 파브레가스가 러시아의 오프 사이드 트랩을 허무는 로빙 패스를 날리자 교체 투입된 스페인리그 득점왕 다니엘 구이사가 빠져 들어가며 오른발로 슛, 추가 득점을 올렸다.
스페인은 이에 그치지 않고 후반 37분 이니에스타의 전진 패스를 받은 파브레가스가 왼측면에서 가운데로 날린 크로스를 이번에는 다비드 실바가 2선에서 뛰어들며 러시아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예르가 몸을 날린 반대 방향으로 슛, 세번 째 골을 터뜨렸다.
이전 경기까지 빛나는 플레이를 펼쳤던 러시아 선수들은 스페인의 골 세례 속에서 점점 몸이 무거워지며 패스 정확도가 떨어져 이렇다 할 반격을 가하지 못했다. 경기 종료 직전 시체프의 결정적인 헤딩 슛도 스페인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의 동물적인 반사신경에 막혔다.
스페인 관중들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 승리의 노래를 불렀고 러시아 관중들은 침울한 표정 속에 러시아 선수들을 위로하는 박수를 보냈다. 히딩크 감독은 비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패배의 아픔을 감추는 미소를 애써 지어보였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연휴는 짧고 실망은 길다…5월 2일 임시공휴일 제외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