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부·연인 프라이버시는 어디까지…

서로의 비밀 서로가 존중

결혼 15년차 주부인 정지영(가명·43)씨. 그녀는 휴대전화가 오면 즉시 통화 내역을 삭제한다. 친구들과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도 남겨두지 않는다. 그녀의 휴대전화를 검사하는 남편 때문이다. 남편은 그녀가 외출이라도 하면 수시로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한다. 휴대전화 친구찾기 등록은 기본이고 쇼핑도 함께 가기를 요구한다. 정씨는 "남편이 휴대전화나 이메일 비밀번호를 모두 알려고 하는데다 사소한 일까지 너무 캐묻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라는 게 없다"며 "요즘 유행하는 영상전화라도 사다가 안겨줄까봐 겁이 난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이모(22)씨는 여자친구 손바닥 안에 있다. 3개월 전 만난 여자친구는 그가 예전에 누구와 사귀었는지,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부에 입력된 여자들의 번호가 몇개인지 훤히 꿰고 있다. 사귄 지 한달이 지나면서 여자친구는 이씨의 휴대전화를 뒤지기 시작했고, 미니홈피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알아내 직접 관리하고 있다. 자주 만나는 친구가 누구인지 다 알기 때문에 거짓말이라도 했다간 금세 들통난다. 이씨는 "여자친구가 알아서 미니홈피에 사진이나 글도 올리고 수강신청도 대신 해줘서 편하기는 한데 숨기고 싶은 비밀까지 다 알고 있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연인과 부부의 프라이버시, 어디까지 지켜줘야 할까. 정확한 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호 간의 합의나 양해에 따라 감추고 싶은 곳까지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사랑'과 '관심'으로 포장된 지나친 관심은 금물이다. 편집증적인 집착이나 스토킹 역시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탓이다. 장문선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제어하려는 행동을 관심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나친 욕구의 표현은 의처증이나 의부증 등 정신장애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잘사는 부부나 건강한 연인관계일수록 상대방의 비밀을 굳이 알려하지 않는다. 상대가 지극히 개인적인 비밀을 알고 싶어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령 휴대전화 통화 목록을 보고자 한다면 일단 보여주는 게 낫다. 감추면 더 큰 의심을 사기 때문이다. 또한 배우자나 연인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 중요하지 않고 공유할 만한 비밀이라면 미리 상대방에게 공개하는 것도 배려이자 믿음을 주는 방법. 상대가 공개하지 않는 비밀은 알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김정희 한국발달상담연구소장은 "알토, 소프라노가 각각 서로를 존중하며 화음을 내듯이 상대의 생각과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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