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화장실 신문화혁명

만사형통, 그 시작과 끝은 먹고 싸는 것이라. 그래서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배설이다. 아니 어쩌면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배설이고 배설문화인지도 모른다. 고래로 가진 자들에게 있어 배설은 체면과 상반되는 모순이었다. 프랑스 귀족부인네들의 치마가 넓어진 것도 베르사이유궁 안에 화장실이 없었던 탓이고, 자금성에 기거하던 권위의 상징 중국 황제도 구멍 뚫어진 의자에 앉아서 대소변을 보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뽕 들어간 프랑스 여인네들의 넓은 치마는 섹시라는 명분을 가지게 되어 다른 용도(?)로 활용되었고, 중국황제의 변은 건강 체크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 배설물로 건강상태를 확인한다는 명분을 달았지만 황제가 재 담긴 마통(오물통)에 앉아 용변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궁내에 화장실을 둘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날 밀폐된 궁내에 수십 개의 재래식 화장실이 있다고 가정해보라. 그나마 배설물을 집 밖으로 송출할 수 있었던 황제는 형편이 좋았다. 일반 백성들은 어떠했을까? 집집마다 화장실을 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 많은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공동화장실이 발달했다.

문제는 중국식 공동화장실의 독특한 문화이다. 우선 화장실에 칸막이가 없다. 당연히 문짝도 없다. 그야말로 공동인 셈이다. 공동화장실에 처음 들어 간 외국인, 마침 다른 이가 없다면 다행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딜레마에 봉착한다. 어느 쪽으로 앉아야 할까? 경험자의 이야기다. 구멍 숭숭 뚫어진 넓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왠지 쑥스러워서 벽을 보고 앉았는데 조금 지나자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들 반대쪽으로 앉더라는 게다.

이런 중국이 최근 사치스러운 고민에 빠졌다. 화장실 혁명 때문이다. 당위론적으로 명분을 찾으면, 중국을 찾는 외국 손님이 가장 불편한 점으로 꼽는 것이 화장실이다. 특히 유명 관광지가 아닌 중국전통거리인 후통(胡同)에는 개조되지 않는 공동화장실이 대부분이다. 칸막이 없는 것은 문화체험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냄새 심한 재래식, 쭈그려 앉아야 하는 좌식은 훈련되지 않는 외국인에게 고통이다.

화장실 개조에 대한 의견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2003년 사스 발생 후, 당시 사스의 전염경로가 인간배설물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일부에서 화장실 개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쭈그려 앉는 것의 건강상 이점과 물 절약을 이유로 내세운 중국인의 옹고집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일부 앞서간 지역에서는 애완견용 화장실 비치를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화장실이 통째로 사라져버리더라.

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중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중국 구석구석을 들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지난달 세계화장실협회가 베이징, 산둥성, 상하이 등지를 방문했다. 이들 지역은 2009년에 예정된 제1회 세계화장실협회총회 유치의사를 강열하게 표출하고 있다. 이미 화장실 혁명을 시작한 몇몇 도시들은 예산을 확충하고, 물을 절약할 수 있는 절수형변기를 개발하고, 우수사례들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안성맞춤이라. 얼마 전 안동 하회마을을 다녀온 중국인사에게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냐를 물었더니 휴게소의 화장실이었다는 대답을 듣고 다소 의외라 생각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세계 최고의 화장실, 그것은 바로 한국 화장실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금성 내에 개조된 화장실이 있는데 바로 앞에 휴식공간이 붙어있다. 그곳에서 중국 관광객들은 간식을 먹고 차를 마신다. 하필 화장실 앞에다 휴식공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중국이 지향하는 화장실의 수준이 무엇인지. 14억 중국인들에게 한국 화장실을 전수한다? 참으로 일거리가 많을 듯하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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