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 자유시 사변

1921년 6월 28일, 러시아령 자유시(알렉세예프스크)에서 한국 독립군 부대와 러시아 적군이 교전한 사건. 흑하사변(黑河事變)이라고도 한다. 이때 독립군은 960명이 전사하고, 약 1천800여 명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됐다. 결국, 이 사건으로 독립군의 대열망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고, 홍범도는 포로가 되어, 소련공산당에 편입됐다. 또한 서일은 '조국광복을 위해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 차라리 이 목숨을 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면서 자결을 하게 된다.

당시 김좌진과 홍범도가 청산리대첩과, 봉오동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독립군은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독립군들은 일본의 한국독립군 토벌작전을 피해 안전지대인 연해주로 집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독립군들은 여기서 통합과정을 통해 대한독립군단을 키워 나갔다. 당시 연해주에 있던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의 문창범과 자유대대(自由大隊)의 오하묵 등은 자유시에 군대주둔지를 마련하여 독립군을 집결하도록 권하게 된다.

여기서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대 상하이 고려공산당 간의 충돌이 발생하자 러시아 적군이 개입한 참변이었다.

▶1950년 북한, 서울 점령 ▶1977년 울릉도, 첫 교통사고 발생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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