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기행] 박재삼의 '추억에서'

우리가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흉터이다.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흉터를 없애기 위해서 수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흉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내 왼손에는 흉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흉터로 인해 지금 내가 아픈 것은 아니다. 오히려 흉터는 지나간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분명 흉터가 생길 때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아픔이 지금까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든 아픔과 슬픔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승화시키니까. 따라서 흉터는 나에게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현재의 장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흉터는 아름답다.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전(生魚物廛)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晋州) 남강(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박재삼, '추억에서67' 전문)

박재삼의 시에는 시간이 할퀴고 지나가면서 남긴 흉터가 담겨 있다. 그건 한(恨)이기도 하다. 김소월이나 김영랑의 시에서 보이는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한이 아니라 현실에 밀착된 삶 자체의 한이 담겨 있다. 박재삼은 평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죽음을 맞았다. 30년 가까이 계속된 고혈압과의 투쟁 끝에 죽음을 맞으면서 '이제서야 오랜 싸움을 끝내는구나'라고 유언을 남길 만큼 그의 삶은 고단함 자체였다.

'추억에서'는 그러한 박재삼의 흉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편을 일찍 잃은 어머니는 진주 장터에서 생선 장사를 하여 남매를 키운다. 그것도 큰 점포에서 하는 장사가 아니라 자배기에 생선을 가지고 가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그런 장사였다. 그랬기에 어머니는 바닷밑에 어스름이 깔리는 늦은 저녁까지 고기 자배기를 놓고 생선을 팔아야 했다. 그래야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삶이 가난을 벗어나게 하지는 못했다. 어머니에게 있어 돈(은전)은 '장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눈깔'과 같이 '속절없이 손 안 닿은 한'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장사를 나가신 후에 시인은 누이와 함께 난방도 되지 않은 작은 골방에서 손 시리게 떨면서 저녁도 굶고 어머니를 기다렸다. 오들오들 떨면서 동구 밖에도 나가보고 마당에서도 서성이다가 추운 방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오누이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옆집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데…. 그런 원망 속에서,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웅크린 채 오누이는 잠이 들었다.

이제 시인도 그때의 어머니만큼 나이를 먹었다. '울엄매야 울엄매'라는 직설적인 표현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진주 남강이 아무리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별빛에 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고달픈 삶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 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이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어머니는 곁에 계시지 않는다. 시인은 한 맺힌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추억에서'라고 했다. 결국 삶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때 그런 삶을 살지 않고 그때 그런 기억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시가 창조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아픈 기억은 시간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추억이 된다. 그래서 시인들은 역설적으로 행복하다.

진주 중앙시장 모퉁이 허름한 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현대식으로 제법 바뀐 생어물전을 돌았다. 어물전에는 온통 가오리(간재미) 세상이었다. 생선 사서 가라는 시장 아주머니들의 거칠고도 쉰 목소리에서 시 속의 어머니를 읽었다. 따뜻했다. 상처는 사라지고 아름다운 시만 남았다. 해질 무렵 들른 촉성루는 조용했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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