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대표적 양반고택인 양진당 대들보 위 도리에 쓴 상량문이 발견됐다. 대들보 위 목재에다 상량문을 바로 쓴 사례는 보기 드문 것이어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회마을보존회는 1일 풍산 류씨 대종택인 양진당 보수공사 과정에서 대들보 위 상량도리를 들추니 반초서체로 가지런히 쓴 340자(字)의 상량문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상량문은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의 손자 류원직이 인조 4년(1626년)에 쓴 중수기로 밝혀졌다. 상량문에는 양진당이 임진왜란 당시 사당 3칸만 남고 모두 불에 탄 것을 겸암이 행랑채 13칸과 동루를 건립하다 세상을 떠나자 손자인 자신이 조부의 뜻을 받들어 예전의 제도에 따라 다시 중수했다고 기록돼 있다.
일반적으로 상량문은 한지에 쓰였으나 상량도리 목재에 직접 쓴 것은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특히 상량문 말미에는 집을 지은 목수는 물론 공사에 참여한 승려와 노비의 이름까지 적혀 있어 당시 중수공사의 규모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했다.
하회마을보존회 류왕근 사무국장은 "이 상량문을 통해 양진당이 어떻게 건립됐고 또 누가 참여했는지 알 수 있다"며 "특히 목재에 직접 쓴 상량문은 보기가 드물어 학계에 의뢰해 연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풍산 류씨 대종택인 하회마을 양진당은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고가옥으로 강릉 선교장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으로 알려져 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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