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소 너나 먹어라'로 시작돼 정권퇴진 투쟁으로까지 발전한 촛불집회는 우리사회의 보수진영의 기반과 전투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촛불집회는 우리 보수진영의 통렬한 자기반성과 새로운 모색 없이는 더 이상 우리사회를 이끌어갈 주요 세력으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던져주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면 일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은 별로 없다. 촛불집회가 과격한 반정부 시위로 변질되고 있는데는 물론 시국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얼굴을 내밀어온 전문 운동가 집단의 선동이 있었지만 이들의 부추김만으로 그 많은 보통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나라당 등 보수층 일각에서는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겠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낸 우리 국민들의 성숙도를 너무 깔보는 것이다.
촛불집회는 민주화니 역사의 변동이니 하는 이른바 '거대서사'가 물러난 자리를 채우고 있는 '생활정치'의 분출이다. 광우병을 일으킬지 모르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는 민주화 등 '큰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내 주변의 문제다. 촛불집회의 원인(遠因)은 정부가 이것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내 생활의 안정은 침해받을 수 없다는 외침은 역으로 자신의 생활의 안전이 그 만큼 위험에 노출될 빈도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은 '먹고 살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먹고 살 만한 여유가 있으면 안전하지만 비싼 국내산 한우를 사먹으면 되고 값싸지만 위험한 미국산 쇠고기는 안먹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국민중 얼마나 이러한 여유를 갖고 있을까. 현 집권층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런 문제에 전혀 고민한 흔적이 없다.
그러한 점에서 촛불집회는 보혁대결의 성격도 일부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 사태에 대해 보수세력은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한마디로 무기력한 모습 그 자체이다. 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진단이나 처방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집회 적극 참여자나 주동자를 색출해 처벌한다는 정도이다. '그렇다면 나를 잡아가라'며 자수의 행렬이 이어진 사태는 현집권층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우습게 보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크게 보자면 우리 보수층에 대한 조롱이나 다름없다.
우리 보수층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추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도덕적 힘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1%'만 산다는 서울 강남의 부자들에게 우리국민중 누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을까. 강남부자를 포함한 우리사회 가진 자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졸부' '투기꾼' '수전노' 등 모욕적인 단어로 나타난다.
또 보수층들은 이렇게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가진자로서의 의무는 방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고위공무원들의 자녀들이 특별한 이유없이 병역면제를 받거나 공무원 자신이 그러한 사실들을 우리는 여러차례 보아왔다.
이러한 우리 보수층의 모습에서 독일에서의 혁명을 꿈꿨으나 결국은 접어야 했던 칼 마르크스가 혁명의 주체세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국은 절망했던 19세기 독일 부르조아의 모습을 그대로 본다면 과언일까.
'병역면제는 신의 아들, 공익근무는 사람의 아들, 현역복무는 어둠의 자식'이라는 말이 개그의 한토막이 되는 우리 현실에서 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 아들과 독일군 고위 장교를 맞교환하자는 독일측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는 사실은 강남 부자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거부로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는 독일군에 처형됐다.
원래 보수(conserve)의 의미는 기존 사회질서에서 어떤 제도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보수에게는 지켜야 할 제도가 어떤 것인지 이번 촛불집회는 묻고 있다. 그러면서 촛불은 답변도 내놓고 있다. 기껏해야 알량한 재산과 내 일신의 영달밖에 더 되겠느냐고.
정경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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