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표범(Il gattopardo)'의 원작은 주제페 디 람페두자가 1958년에 발표한 동명소설이다. 이태리 통일운동이 한창이던 19세기 시칠리아를 무대로 귀족계급의 몰락과 중산층의 가치가 부상하는 시대상을 그렸다. 소설에 "만사를 이전과 같이 유지하려면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귀족들의 대화가 나온다. 귀족의 특권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아무 것도 바꾸지 않으려면 다 바꿔야 한다는 게 그들의 시대인식이었다. 한 사회학자는 이를 '디 람페두자 원칙'이라고 했다.
지난 주 방한한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민주주의(democratia)는 원래 시끄러운 법"이라고 말했다. 서로 옳다고 치고받으면 시끄러워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시끄러워야 반드시 민주주의가 되는가'에 의문을 표한다. 정부는 촛불집회가 폭력시위로 변질됐다며 날을 세우고, 시위 참가자들은 80년대 공안정국의 구태의연한 방식이라며 정권 타도를 외치고 있다. 과하게 표현해 권력(Kratia)을 두고 시민(Demos'인민)과 국가가 계속 충돌하는 형국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극한 대결이 아니라 조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절차와 방식에 있다. 사람의 지배가 아니라 법과 규칙의 지배인 것이다. 쇠고기가 한국 민주주의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이런 상황을 람페두자 원칙에 대입해보자. 민주주의를 하다보면 당연히 시끄럽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정부도 시위자도 새로운 방식에 눈을 돌려야 한다. 시비곡직이 감정싸움이 되고 폭력이 되고 종국에는 화해할 수도 없는 지경에 빠지기 전에 말이다. 의원들은 국회로 돌아가고, 촛불시위는 비폭력 평화집회로 돌아가고, 정부도 곤봉을 거둬야 한다.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해법을 찾아가는 방식은 왜 외면하는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사기'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 구절은 그래서 가슴에 와닿는다.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며 생각이 다르거나 소인배라도 포용해야 큰 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귀 어두운 사람에게 계속 큰소리 질러대면 듣는 사람도 덩달아 큰소리 내기 마련이다. 변화를 통해 불변을 유지한다는 원칙을 한번 새겨봄직 하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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