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원 섭섭" 강재섭 대표 단독 고별 인터뷰

"2년이라는 시간 전체가 희로애락의 덩어리였다. 지나고 보니 다 즐거웠고 괴로웠고 나 같은 처지의 당 대표가 없었다. 10년 만에 좌파정권을 물리쳐야 하는 시기에 지지율 1, 2위 후보가 같은 정당에서 싸운 것도 처음이었고 실세도 관리형도 아니었지만 오너의 힘이 없으면서 오너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3일 열리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당대표의 임기를 채우고 당기를 차기대표에게 인계하는 강 대표는 대표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아보라는 질문에 이처럼 대답했다.

대표직 퇴임을 앞두고 있는 강 대표를 1일 국회대표실에서 만났다. 경선·대선에 이어 총선을 거치는 동안 늘 짜증이 난 듯한 얼굴로 대하던 그의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그는 "(대표직을 떠나는 것이)시원섭섭하다"며 먼저 말을 꺼냈다.

퇴임 후 거취에 대해 묻자 "정치행위는 공무원들처럼 승진 등의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공을 세웠으니까 그 다음에 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인"이라면서 "오히려 당장 뭘 하려는 것보다는 전체를 위해 희생하고 물러나는 모양새가 더 좋다"고 말했다.

그는 "돌아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꾸 뒤를 쳐다보게 마련이지만 나는 석양만 바라보고 간다"며 "당분간은 아무 일도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며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퇴임 후 경기도 분당 자택 인근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하고 오는 8, 9월쯤 연구재단도 출범시킬 예정이다. 그래선지 여권 안팎에선 강 대표가 언젠가는 정치권에 돌아와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이를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이에 강 대표는 "20년 동안 정치를 했지만 이제 환갑을 지났을 뿐 밖에 나가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할 것 아니냐. 퇴임했다고 집에 있을 수는 없어서 사무실을 마련한 것"이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한 1년쯤 쉬면서 연구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에는 "확(정치권을) 떠나서 완전히 잊혀지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숨가쁘게 달려왔다. 집권여당 시절 정치에 입문, 당총재 비서실장과 기조실장, 대변인, 원내총무에 이어 부총재, 원내대표 등 그가 맡았던 주요 당직만 10개가 넘는다.

"수십년 동안 쌓인 노폐물과 때가 얼마나 많겠는가. 당분간은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 실제 그는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모종의 역할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당분간 아무 것도 하지않겠다는 뜻을 완강하게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총리 후보로 거명된 것에 대해서도 "2반 반장하다가 3반 반장하면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반장론'으로 총리설을 일축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에 따른 과일을 대구경북 사람들이 따먹을 수 있도록 봉사하는 일에는 나서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지역구였던 서구에 대한 애증도 빠뜨리지 않았다. "서구는 수성구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남는 땅이 없어서 대규모 개발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투리공원을 많이 짓거나 도로를 넓히고 경로당과 체육관 짓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며 해놓은 것이 없다는 비난을 해명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7·3 전당대회 이후 대구경북 정치권의 위상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은 듯했다. 그는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등이 있어 상층부는 튼튼한데 "(이를 받쳐 줄)허리가 약하다"고 지적하면서 대구경북 몫으로 전대에 출마한 김성조 의원을 걱정했다. 자신이 부총재로 출마했을 때도 대구경북이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킨 강 대표는 "지역출신이 출마했다면 친박과 친이를 따지지말고 무조건 확실하게 밀어주는 것이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의 도리"라면서 "김 의원이 당선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미련없이 떠나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강 대표가 다시 정치권으로 되돌아올 때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서명수·이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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