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경주 정치다."
2일 경주시의회 의장 선거를 지켜본 한 외지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경주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것이었다. 이날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이 사전에 모여 투표로 결정했던 최병준 의원이 1차선거에서 낙마했다.
당선자는 무소속의 이진구 전 의장. 최 의원은 8표를 얻은 데 반해 이 의원은 무려 12표를 받았다. 한나라당 소속이 15명이고 무소속 5명, 민주노동당 1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나라당 표 중 7표가 이탈한 셈이다. 더욱이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은 사전에 모의투표까지 해가며 후보자를 결정한 상태여서 최 의원이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물론 이번 선거에는 총선에서 떨어진 정종복 전 국회의원이 개입하지 않아 시의장 선거 결과를 '한나라당 패배'라고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당선된 이진구 의원이 4월 총선에서 정 전 의원과 맞붙어 금배지를 거머쥔 김일윤 국회의원 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는 묘하다.
한나라당 소속 경주시의원들은 지난 총선에서 이진구 의장 당선자 등 무소속 시의원 5명과 혈전을 벌인 끝에 패배했다. 앙금이 없다고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반대편의 수장을 의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뭘까? 근본적으로는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을 규합하지 못한 최 의원에게 흠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나라당 소속으로 후보를 결정해 놓고 역선택한 시의원들에게도 도덕적 가치를 저버린 흠결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예단하고 분석하기에는 경주 정치에는 참으로 묘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시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정종복 전 의원을 낙마시키고 비록 4선을 역임했지만 '흘러간 물'로 여겼던 김일윤 국회의원을 당당히 당선시켰다. 경주 정치의 이변과 예측불허는 그뿐이 아니다.
백상승 현 경주시장도 한때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총선에 나서 무소속의 임진출 후보에게 패배했는가 하면, 집권당 후보로 말을 갈아탄 임진출 의원은 야당인 민주당 이상두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이외에도 지금까지 시의회 의장 선거에서도 여러 번 이변이 있어 경주 정치는 "정말 오묘하기까지 하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지역정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외지인이 거의 유입되지 않아 보수성이 어느 지역보다 강한데다 시민들도 저마다 개성이 강해 자기 기준에 벗어나면 어떤 타협도 받아들이지 않는 독특한 문화와 무관치 않다"는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천년 수도를 지켜온 경주만의 자존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경주의 모 사회단체 대표는 "이 분위기는 앞으로도 여전히 이어질 것"이라면서 "경주에서 정치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말로 경주의 정치를 풍자했다.
경주·최윤채기자 cy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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