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고층 건물이 즐비한 대구시내 한복판에서 역사가 흐르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동성로와 지척인 진골목~약전골목은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까맣게 모르는 곳이지만 대구 근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반월당네거리에서 한일극장네거리 쪽으로 걷다 중앙시네마 옆 소방도로에 들면 왼쪽 주차장 옆으로 '이런 길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별천지가 나타난다. 크고 넓은 동성로와는 판이하게 좁고 기다란 골목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진다. 바로 '진골목' 초입이다. 언뜻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이 골목의 역사는 족히 100년을 넘는다. 1800년대 말~1900년대 초부터 '진골목'이라는 명칭이 대구 지도에 종종 기록돼 있다. 경상도 말로 '진'은 '긴'이라는 뜻이며, 처음의 진골목은 지금의 경상감영공원까지 이어지던 '진' 골목이었다.
진골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은 '정소아과의원'이라는 간판이 달린 2층집. 현존하는 대구 최고(最古)의 양옥건물로 일제시대 때 지어진 근대 주거문화를 엿볼 수 있고, 아담한 정원과 소나무가 일품이다. 이처럼 진골목에는 1920년대 근대 건축물과 구한말에서 일제시대 한옥형태가 지금까지 보존돼 그 당시 대구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근대 다방의 전통 명맥을 이어가는 미도다방, 육개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던 진골목식당, 30년 역사의 보리밥집은 아직도 늙수그레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50m 남짓한 진골목을 빠져나오면 350년 역사의 약전골목을 만날 수 있다. 약전골목은 조선 효종 때부터 봄과 가을로 나눠 약령시가 열렸던 곳. 1900년 당시 추정으로 거래 상인만 1만명, 거래액 100만원 이상의 엄청난 시장을 형성했지만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통제로 시장이 축소됐고, 해방 이후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침체의 길을 걸었던 곳이다. 하지만 1970년대 약령시 변천사와 기록자료 및 유물을 전시한 약령시전시관이 들어서면서 새 전기를 맞았고, 2004년 약령시한방테마특구 지정 이후 2010년까지 296여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어서 대구의 새 명물 거리로 우뚝 설 전망이다.
얼추 100곳 안팎의 약업사가 몰려 있는 약전골목은 대구경북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제일교회 옛 예배당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1898년 남성정교회로 처음 설립된 뒤 1933년 벽돌 교회당을 새로 짓고 지금의 '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1937년 5층 높이의 종탑을 세워 현재 모습을 갖춘 교회는 13세기~15세기 중세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이수민(43'여)씨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꼭 한번씩은 쳐다보게 된다"며 "빨간 교회 건물이 녹색 담장 식물과 어울린 모습이 언제봐도 인상적이다"고 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 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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