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은'돈'이다. 한때 외래종에 밀려 토종은 거의 자취를 감추는 듯 했지만 최근 토종 식물들의 효능과 맛이 과학적으로 검증되면서 오히려 토종이 각광받는 세상이 됐다. 토종을 지역의 명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제 몸에 맞는 먹을거리는 역시 우리 땅에서 나는 먹을 거리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평범한 깨달음 때문이다.
어린 시절, 풋고추에 된장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은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그때 고추는 은근히 매우면서도 단맛을 풍겨 입맛을 돋우곤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을 회상하는 사람들은 "요즘 고추엔 그 맛이 안난다"고 푸념이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각 지역마다 특색있는 재래종 고추가 재배됐지만 그 이후 종묘사가 판매하는 시판종으로 대거 물갈이 됐다. 1600년대 남미 등지에서 고추가 전해진 이래로 각 지역 토양과 기후에 맞게 토착화된 재래종은 병충해에 약하다는 이유로 농민들로부터 버림 받았다.
지역마다 독특한 맛을 자랑하던 재래종 고추가 다 사라지고 이제 영양 수비초'칠성초'대화초와 청도의 풍각초 정도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고추 전문연구기관인 영양고추시험장은 1996년 문을 열면서 가장 먼저 재래종 자원을 유지, 개량하는 데 힘을 쏟았다. 덕분에 수비초'칠성초 같은 고추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남은 것.
영양고추시험장 권태룡 실장은 "재래종은 고추의 모양부터 다르고 매운 맛과 단 맛이 적절히 조화돼 밋밋한 맛의 시판종과 다르다"고 말했다.
재래종이 한꺼번에 사라진 이유는 병충해에 약하기 때문. 영양고추시험장은 개량을 통해 그 점을 보완해나갔다.
그 결과 현재 수비초는 영양의 70여농가가 20ha가량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600g당 8천원선으로, 일반 시판종에 비해 1.5배 정도 높은 가격을 받았다. 아직 수확량은 시판종의 90%에 불과하지만 이 또한 개선 중이다.
권 실장은 "현재 전국 어디나 고추 종자가 같아 맛이 같을 수밖에 없지만 재래종은 맛과 모양의 차별화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면서 "앞으로 내병성을 높이고 농가 보급을 확대해 영양의 대표 상품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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