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뒤면 여름방학이다. 이번 방학이 끝나면 학교 현장에 상당한 변화들이 예상된다. 변화의 계기는 '4·15 학교 자율화' 조치이다. 3개월 전에 발표됐지만, 학교 일정이 이미 정해진 계획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상태여서 대부분 학교들은 2학기가 돼서야 자율화 조치를 학교 운영에 반영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공교육의 내실화를 통해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교육 선진화를 이룩하겠다고 교육정책의 방향을 밝혔다. 자율화 조치도 이에 따른 것. 학교 자율화는 대략 수준별 이동식 수업 확대, 사설 수능 모의고사 제한 폐지, 방과 후 학교 영리단체 참여 허용 등으로 요약된다. 전교조 등 진보적 교육시민단체들은 자율화가 성적지상주의를 강화하고 사교육을 더욱 조장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사설 모의고사와 우열반 편성, 0교시 수업 등을 일괄 금지했던 것은 과도한 입시경쟁, 성적지상주의로부터 교육의 본질이나 학생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시장지향적인 현 정부는 '규제'보다는 '자율'에 손을 들어줬다. 자율화는 선진교육을 지향하는 국가에서는 당연한 조치이다. 국가 주도의 하향식 교육개혁은 수동적 자세를 초래했고, 형식주의에 사로잡힌 교육개혁은 학교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실패했다. 따라서 정부는 지방과 학교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고 이를 촉진하기 위해 시장경쟁원리의 적용 확대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정부는 수많은 교육개혁안을 추진했으나 교육현장에 혼란만 초래했을 뿐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대학입시제도만 놓고 봐도 그렇다. 그간 교육정책의 핵심은 공교육 내실화, 사교육 줄이기, 학업성취도 향상 등에 있었다. 현 정부의 자율화 조치도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이다. 과거의 정책들이 실패했다고 해서 이번 자율화 조치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성급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간의 교육정책들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자율화 조치에 대한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는 교육개혁 정책들이 줄곧 실패한 것은 입시 중심의 교육풍토, 학벌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경기도교육청에서 '학교자율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서 한국교육개발원 김흥주 교육분권연구실장은 학교 자율화의 성공적 정착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학부모의 무리한 교육적 요구와 관여 ▷교장의 학교운영능력과 리더십 미흡 ▷학교재정 부족 ▷학교 내 부조리 관행과 비리 등을 들었다고 한다. 부인하지 못할 지적들이다.
지금까지 학교에는 많은 '자율화'가 있었다. 두발자율화, 교복자율화, 야간자율학습, 자율적 보충수업…. 진정 이런 것들이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런 자율화가 학생과 학교의 개성과 특성을 살리고 있는가? 다른 학교가 보충수업을 하니 우리도 해야 하고, 인근 학교를 이기려면 모의고사를 한 번이라도 더 봐야 한다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자율화'란 가면을 쓴 '획일화'가 학교에 판을 칠 것이다. 이번 자율화 조치를 계기로 학교 구성원들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전환기에서 학교의 존재 이유, 교육의 근본적 문제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과거 회귀나 획일적 교육으로는 교육선진화를 기대할 수 없다.
김교영 사회1부 차장 kimk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