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K정치권, 좌장이 뭇매 맞아도 '소 닭보듯'

[설 땅 잃은 TK정치권] ③나홀로 살아남기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차라리 18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게 좋았다. 그러나 가정은 무의미하다. 이제 와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대구경북의 좌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구경북이 나서서 도와야 한다.'

이상득 의원의 '존재의 이유'에 대한 대구경북 의원들의 생각을 종합하면 이렇다. 여기에는 친이, 친박 구분이 별로 없다.

이 의원은 침묵하고 있다. 남경필·정두언 의원 등 수도권 소장파로부터 파상 공격을 받자 "앞으로 인사에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숨었다. 일각에서는 그래도 '실력 행사 중'이라고 보지만 이 의원 측근은 "정말 조용히 있다"고 전했다.

경북의 한 중진 의원은 이와 관련 "6선의 이 의원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대구경북의 큰 손실"이라고 했다. 특히 국회의장단, 한나라당 지도부 등 '국회 권력'에 대구경북이 전혀 진출하지 못한 현실에서 이 의원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그러나 상처투성이다.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이 공격할 때 누구 하나 나서서 지켜주지 않은 결과다. 날아드는 총탄을 직접 맨몸으로 받다보니 오발탄에도 상흔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대구의 한 중진 의원은 "이상득 2선 후퇴론에는 권력을 둘러싼 다양한 계산이 깔려 있다"며 "이제 대구경북이 나서서 그를 지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독한 것은 이 의원만이 아니다.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정치적 공격을 받고 사표를 냈을 때 누구 하나 그를 두둔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느니 "전화를 안 받을 때 알아봤다"며 잘됐다고 하는 사람들도 적잖았다. 서울 출신 한 의원 보좌관은 "박 비서관이 스러지고 나면 아쉬운 것은 대구경북일텐데 대구경북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고 했다.

대구경북 출신이 정치적으로 크려 해도 정작 대구경북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 실패하는 사례도 잦다. 강재섭 전 대표가 대표적이다. 내 사람을 만들지 못하는 그의 캐릭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열리지 않는 대구경북의 마음을 접하며 강 전 대표는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낙마한 김성조 의원도 마찬가지다. 친이-친박 구도 속에 친강재섭이었던 김 의원의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부산경남에선 박희태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허태열 최고위원 등 3명의 지도부를 배출했는데 연고 의원만 해도 50여명이나 되는 대구경북은 김 의원을 지켜내지 못했다. 경북 출신 경기 지역구 한 의원은 "친이-친박 놀음의 희생양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구경북민의 정치적 셈법은 우둔할 정도라는 지적도 많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끝난 지 오래인데도 아직도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과 '패배한' 박근혜 전 대표를 동격화하는 정서가 존재한다. 지역 경제가 그렇게 어려워도 '살아 있는 권력'의 가치를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대구경북이 이 대통령을 비판하고, 언제 역할을 할지 모르는 박 전 대표를 그리워하니 대구경북 의원들도 덩달아 친이-친박으로 나뉘어 싸우는 것"이라며 "힘든 지역사정을 생각한다면 친이-친박의 정치 게임을 할 겨를이 그들에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청와대, 국회, 한나라당, 4대 권력기관에서 대구경북의 힘은 빠져가고 있지만 외부의 시각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있지 않느냐는 게 청와대와 국회 주변의 시각이다. 이상득-최시중(방통위원장) 등 실력자들의 힘은 여전할 것이란 추측도 한다. 총선에 불출마한 한 전직 의원은 "대구경북이 역차별을 받는다고 하면 엄살이라 한다"며 "속내를 털어놓고 호소할 데도 없다"고 답답해 했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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