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소주

소주는 한국 근대사에서 고달픈 서민들의 안식처이자 피난처였다. 그만큼 한국민의 소주 사랑은 남달랐다. 최근에는 소주 폭탄주를 '국민주'의 반열에 당당히 올려놓기도 한다. 목젖을 넘어갈 때의 순간적 말초신경 자극 때문인가, 이제는 상당량이 일본과 구미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이 소주가 세계적인 사전에 새 단어로 등재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미국의 대표적 영어사전 출판사인 메리엄 웹스터는 한국의 소주(soju)를 새 단어로 대학사전 최신판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단어 뜻은 '쌀로 증류한 한국의 보드카'로 정의했다. 지금은 도수가 낮아져 보드카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아줌마' '火病(화병)' 등에 이어 소주가 세계적인 단어로 인정받는 순간이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국산 소주 1병만 있으면 12년산 위스키와 손쉽게 바꿔 먹을 수 있다. 소주 맛을 잊지 못하는 교민들이 소주를 많이 찾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인도네시아 교민회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사업에 성공했는데 안타깝게도 겨울철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안주 삼아 소주를 먹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대형 냉동 창고를 하나 만들어 두터운 옷을 입고 그 안에 들어가 가끔씩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런 정도니 국내 소주 소비량이 늘 수밖에 없다. 올 들어 5월까지 국내 소주업체 10개사 판매량은 4천758만 상자(30병들이)로 벌써 국민 1인당 평균 1상자 이상을 마신 셈이다.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한국민에게 '소주 한잔'은 마음을 추스르는 청량제가 아닌가.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소주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술은 항상 경계하면서 마셔야 할 기호식품이다. 전라도 강진 유배지에서 다산 정약용이 술을 경계하라며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2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새롭다.

"참으로 술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처럼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과 혀를 적시기도 전에 직접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그래서야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이 귀신처럼 되고 토악질을 하고 잠에 곯아떨어져 버린다면 무슨 정취가 있겠느냐. 이야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

윤주태 논설위원 yzoot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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