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영섭의 올 뎃 시네마]놈놈놈

김치냄새나는 대추격전에서 살아남는 한 놈은?

아마도 그것은 기념비적인 뻔뻔함과 새로움이었을 것이다. 판초 우의를 두른 채 늘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는 반 영웅. 두 사람이 맞대결을 벌이던 '황야의 결투'를 세 사람의 삼각 구도로 다시 재편하면서, 손에 땀을 쥐게하는 참신함. 그러나 세르지오 레오네가 '석양의 무법자'를 만들었을 때, 그가 노렸던 것은 비단 새로운 웨스턴의 출현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석양의 무법자'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 간의 종이 한 장 차이조차 나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소와 미국의 건국신화에 대한 한 이탈리아 감독의 도발적인 주석 같은 것이었다. 마지막 장면, 십자가 자욱한 묘지에서의 결투는 바로 미국의 땅과 서부가 거대한 공동묘지였음을, 그야말로 모뉴멘트 벨리라는 순정한 땅에서 신성한 건국신화를 세웠던 미국의 서부극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새로운 영화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원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처럼 이국땅 만주 벌판에서 새로운 웨스턴 장르의 부활을 꿈꾼다. 만주 웨스턴이라 하든 김치 웨스턴이라 하든 상관없다. 한국적 서부극의 혈맥은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쇠사슬을 끊어라'가 원전으로 삼은 영화 중 하나가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였으니까.

그리고 개봉된 '놈놈놈'은 '달콤한 인생'에 이어 다시 한번 총에 의한, 총을 위한, 총의 영화로, 상영 내내 아비규환의 '총질'의 진수를 보여준다. 물론 난무하는 것은 장총, 연발총, 기관총만은 아니다. 칼과 쇠도리깨와 작살과 나무 망치가 불쑥 등장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캐릭터를 은유하고, 결국엔 다이너마이트까지 등장해 미증유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연출하는 것이다.

스타일이 있고, 와이어 줄을 타고 멋들어지게 총질하는 정우성의 카리스마가 있고, 송강호의 전매특허 유머와 그 유명한 삼각 김밥 아니 삼각 결투가 있는데도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에 단 한가지 없는 '그것' 때문에 정신이 산란했다. 바로 '섞임'.

'구성' '유기성' '통일성' '조직성'의 다른 말, '섞는다'. 연기, 특히 이병헌의 악역 연기는 발군인데도 세 사람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연기가 앙상블을 이루지 못하고 따로 논다. 기차 신, 귀 시장 신, 아편 굴의 유머러스한 에피소드, 마지막 결투 신, 각 신 각자가 뛰어나고 특출한 단편들인데도, 한 영화 안에서 이야기들은 따로 국밥이다. 화려한 360도 트래킹이나, 그 유명한 세르지오 레오네의 이마에서 얼굴까지 잡는 클로즈 업, 드넓은 만주 벌판을 배경으로 하는 신나는 추격전, 폭발 신 등 헐리우드에서 즐겨쓰는 장치와 연출이 다 있는데도, 이들은 엇박자의 불협화음으로 삐걱거린다.

2시간 20분이란 영화 내내 그토록 산만하고 어지러운 인물들을 뒤좇은 종착역이 다시 세르지오 레오네의 인간관 그대로라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는가. 물론 김지운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는 꿈, 이상,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욕망에 충실한 송강호, 꿈을 꾸는 서늘한 중간인 정우성, 그리고 손가락을 절단하는 거세적 이미지로 나타나 끝끝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상의 탑을 기어오르는 이병헌.

송강호는 과거 자신의 기억을 묻고 오직 보물을 찾아 헤매며, 정우성은 송강호의 등에다 대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려다 입을 다물어 버리고, 이병헌은 모든 보물을 다 걸고라도 누가 최고인지 겨루어 보자고 기세등등한 미소를 짓는다.

'놈놈놈'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삼위일체 같은 욕망, 꿈, 이상 즉 이드, 에고, 슈퍼 에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막스 브러더스의 코미디부터, 최근 웃찾사의 '영숙아' 코미디까지 회자되는 현대적 인간관의 삼위일체 아닌가.

나는 묻고 싶다. 이 모든 장르적 욕망의 섞어 비빔밥 속에서, '김지운 감독' 당신만의 고유성은 과연 무엇이오? 그는 진정 자신의 영화가 그저 '소비' 되기를 원하는 것일까. '놈놈놈'을 잘못 비판한 석고대죄할 만한 '년년년'이 되어도 꼭 물어 보고 싶은. 이 재능 있는, 그러나 그 재능을 허비하고 있는 감독에게 꼭 물어 보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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