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싸움

구경 중에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 싸움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한다. 젊은 사람은 싸움에서 지면 무릎을 꿇고 형님으로 모시고, 늙은 사람은 그 한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준다. 지금은 법적으로 하자고 한다.

사람들은 싸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짐승에게 싸움을 붙이고, 싸움하는 영화를 즐기고, 싸움하는 스포츠도 즐긴다. 한때 복싱이란 것이 최고의 스포츠였다. 지금은 복싱 같은 것은 시시해서 보지 않는다. 싸움과 똑같은 격투기나, K1 같은 것을 즐긴다.

스포츠 싸움은 입이 없지만 실제 싸움은 입이 많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금방 안다. 요사이 유행하는 유머(와이담) 하나를 소개한다. 부부가 싸움이 벌어졌다. 남편이 돈은 못 버는데 밤일만 잘하면 마누라가 "네가 짐승이지 사람이가?" 이렇게 싸우고, 반대로 돈은 잘 버는데 밤일은 못하면 "돈이면 다가?" 이렇게 싸우고, 밤일도 못하고 돈도 못 벌면 "네가 나한테 해준기 뭐고?" 이렇게 싸우고, 밤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벌면 "그래 네 잘났다" 이렇게 싸운다고 한다.

싸움 중에 제일 재미없는 것이 거지 제자리 뜯기 싸움이다.

어떤 사람은 사석에서 모씨를 그렇게 욕해놓고, 막상 만나면 그렇게 반갑게 인사할 수가 없다. 이 사람이 쓸개가 있나? 없나? 의심이 된다. 여의도에 가면 쓸개없는 사람이 많다. 만날 때마다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할 수가 없다. 활짝 웃는 얼굴로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돌아서면 총칼을 들이댄다. 싸움만하고 민생은 뒷전이다. 혈세가 아깝다.

싸움에도 아름다운 싸움이 있다. 거제도와 통영의 싸움이 벌어졌다. 시인인 유치환을 서로 내 고향 사람이라고 법적인 싸움까지 벌어진 것이다. 청마의 시 '출생기'에 "남쪽 먼 포구"라고 묘사한 것과 청마의 부친 호적등본을 근거로 통영이 고향이라 하고, 거제도에서는 청마의 형 유치진의 자서전 기록을 근거로 거제도 둔덕마을을 청마의 출생지로 하고 있다. 두 곳 모두 청마 문학관이 있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는 '메밀꽃 필무렵'의 이효석의 무덤을 서로 유치하기 위해서 싸움을 하고 있다. 남원시 인월면과 아영면이 서로 흥부전의 무대라고 싸우고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과 전라남도 곡성군이 서로 심청이 고향이라고 싸우고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와 경기도 하남시는 도미부인(정절)을 서로 도미설화의 고장이라고 싸우고 있다.

서로 자기지역 인물을 존중하고, 문화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싸움이다. 대구 경북에도 이런 싸움을 구경하고 싶다.

송일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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