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죽음이 여러 죽음을 불러들인다." 시인 고은 선생이 쓴 시의 한 구절이다. 어느 상가, 문상객들로 북적대는 장면을 묘사했을 것이다. '한 죽음'은 알겠는데, 멀쩡하게 살아서 조문하러 온 사람들을 보고 '여러 죽음'이라니, 이 무슨 말씀인가. 그러나 이 구절이 갖는 의미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고, 만고의 진리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거창한 '법어'도 아니다. 이 말은 그저 "상가에 온 사람들도 누구나 언젠가는 한 번 죽는다"는 뜻일 뿐이다.
지난 7월 3일 새벽 3시 30분, 평론가 김양헌이 훌쩍 저 세상으로 갔다. 그는 죽고, 아직 여기 산 자의 몇 마디 헌사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평론가로서의 그의 능력이 아깝다는 것이다. 평론 인구가 태부족인 우리 대구·경북 문단으로선 전국적인 촉망을 받고 있었던 그의 존재가 보배로웠기 때문이다. 그의 깊은 공부와 내공이 그동안 많은 문학인들의 작품을 조목조목 갈무리하고, 그 성과를 잘 밝혀왔던 것이다.
그는 최근 5~6년간 외로웠다. 아니, 내 눈에 그렇게 비쳤을 뿐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와 알고 지낸지는 이미 오래됐지만 서로 자주 어울린 것은 바로 이 기간이다. 특히 지난 2003년 연말, 인도여행을 같이 하고난 후부터 부쩍 가까워졌었다. 인도여행 내내 같은 방을 쓰면서, 그와 나는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 외에 따로 짠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가 어디든 '숙박지의 새벽'을, 그 일대의 거리를 살펴보기로 한 것. 나는 그때 김양헌과 함께 했던 인도에서의 그 '새벽과외 공부' 덕분으로 꽤 여러 편의 시를 쓰기도 했다.
고, 김양헌. 아무래도 그는 인간을 살피기보다는 하늘과 땅에 안기고, 초목에 마음을 뺏기는 자연주의자였던 것 같다. 아니, 무슨 주의 주장을 폈다기보다는 생래적으로, 온몸으로 대자연에 섞여들고자 하는 열망이 보였다는 것이다. 평소 자연경관을 향해, 혹은 작은 풀꽃에 빠져 경탄해마지 않는 그의 호기심과 흥취, 그 주체하지 못하는 몸짓 자체가 한 편의 감동할 만한 시였다.
1997년 여름. 나는 김양헌을 포함한 대구의 몇 몇 시인들과 함께 남해의 통영, 욕지도엘 갔었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어디 술뿐일까, 김양헌은 그렇듯 눈앞의 자연에 자연스레 잘도 취했다. 섬의 숲 향기든 새소리든 구름이든 부서지는 파도든 눈에 짚이는 대로 뭐라 뭐라 웅얼거렸다. 그래, 내가 "어이, 평론가 나리. 시 좀 읊지 마시라. 여기 시인들 다 굶어죽겠다"고 했으나 그는 들은 척도 않았다. 동행한 시인들도 이런 저런 지청구를 놓았으나 김양헌의 즉흥시는 밤중까지 계속되었다.
"달빛에 몸을 널어 말리다" 김양헌이 또 크게 소리쳤다. 파도소리 바로 앞에, 갯바위 위에, 달빛 아래 벌렁 드러누운 그가 외친 이 구절은 나중에 내 글에도 슬쩍 '소매치기'해 넣은 적 있다. 아무튼 그때 그는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아랫도리를 까 내리고 '거풍'을 감행했다. 물론, 나머지 일행도 앞 다투어 따라했다. 그는 그날 밤늦도록 숙소에 올라오지 않았다. 파도가 차르륵 차르륵 씹어 먹는, 달빛이 촉촉하게 녹여먹는 몽돌소리를 들으며 그는 그렇게 혼자 갯바위에 오래 누워있었다. 그의 몸, 정말 달빛이 모두 말려 자취 없이 거두어간 것일까. 우리 곁에 참 순하고 착하게 살던 그가 없다.
아름다운 평론가 김양헌. 그가 밤늦도록 귀에 담은 그 섬, 몽돌소리는 무슨 말이었을까. 그가 눈 맞춘 풀꽃들은 또 무슨 의미였을까.
영천시 임고면 임고서원 부근 '돌빼기 마을'에 위치한 그의 선산은 복숭아나무로 둘러싸인 구릉지였다. 오는 봄, 복사꽃 필 무렵이면 김양헌은 또 얼마나 취할까. 무덤을 짓고 다지는 달구질을 할 때 나는 생전 처음 '앞소리'를 해봤다. 달구소리의 가락은 좀 흉내 낼 수 있지만 그 사설은 잘 모른다. 내가 뭔 소릴 했던가. "어허, 달구~, 돌아볼 것 하나 없소/북망 먼 길 잘 가시오." 그는 잘 갔을까, 잘 갔을 것이다. 장례 기간 내내 느낀 것은, 그는 참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중병이 동반하는 극심한 통증에도 김양헌은 그저 이마에 땀방울만 송골송골 매달았다. 그는 무엇을, 왜 참았을까. 이마에 맺힌 그 진땀이야말로 사실은 전부 비명이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있다.
이제 바람재 너머 저 어느 기슭의 어여쁜 풀꽃으로, 바닷가 달빛 아래 단단하게 구르는 몽돌 소리로, 다시는 아플 일 없는 김양헌, 그가 산다.
문인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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