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감 후] 박 대 박

10여년 전 IMF 외환 위기 당시 필자는 경제부에서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자고나면 기업이 도산하는 터라 부도 기사 써대기 바쁘던 시절이었지요. 그 당시 경제상황은 '전쟁'이었습니다. 퇴출 결정이 난 대동은행 본사를 국민은행 직원들이 '접수'하던 날, 꼬박 밤을 새워 25건의 기사를 마감하고 나니 먼동이 터오더군요. 당시 경제 환란의 어두운 터널은 몸서리치도록 길었습니다.

지금 필자는 그때와 유사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물론 무방비 상태에서 개념조차 없이 당하던 10년 전과 지금의 한국 경제 펀더멘털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번 호되게 당해본 한국이 다시 외환위기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작 걱정스런 것은 대외변수보다 정부의 위기관리 및 대처능력 부재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발표한 내각 명단을 보고 필자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한승수 국무총리,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둘은 외환위기 전후에 경제부총리와 경제기획원 차관을 지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대통령은 두 사람이 IMF를 경험했으니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로부터 넉 달이 지난 지금,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급변하는 국제경제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팀이 한 것은 역주행이었습니다. 성장 드라이브를 걸겠다며 고환율 정책을 무리하게 펼쳐 갖은 후유증을 자초하다가, 고통스런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자 환율 하락 정책으로 급선회합니다. 지난 9일 외환당국은 외환거래가 한산한 점심시간을 틈타, 수십억달러를 기습적으로 시장에 내다팔았습니다. 외환시장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정부는 마치 시장과 전쟁하듯 '롤러코스터' 경제정책을 펼칩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자신이 당선되면 재임 중에 종합주가지수 5,000 시대를 열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747'(7% 경제성장·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세계 7대 경제강국 진입)이라는 '꿈같은' 공약도 내놨지요. 그러나 지난해 8월 세계경제에서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로 경보음이 터져나오던 때였습니다. 2008년부터는 전례없는 원자재 가격 폭등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많았습니다. 눈치가 빨라야 절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했습니다.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747 공약을 내걸었다 해도 제대로 된 상황 인식능력이 있었다면 실현성 없는 공약 따윈 포기해야 했습니다.

KBS2TV 개그콘서트에 '박대박'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궤변으로 웃음을 선사하는 코너지요. 그 코너의 형식을 빌어 만든 유머가 있더군요.

박1: 경제를 살리신다고 했는데 지금 경제가 죽었나요?/박2: 안 죽었지./박1: 근데 왜 살리신다고?/박2: 안 죽었으니까 죽여야지./박1: 무슨 소리야? 안 죽었는데 왜 죽여?/박2: 내가 경제만 살리면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죽여서 살려야지? 그게 뭐가 문제야?

이번 개각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연히 교체돼야 했습니다. 그것은 민심의 요구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환율 정책 실패 책임을 지고 차관이 경질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만수 장관은 이미 시장으로부터도, 기획재정부 내부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강만수 카드'로 경제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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