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격투기에선 쩔쩔…태권도, 실전성 높여라

세계적인 열풍이 불고 있는 이종격투기 무대에서 '태권도'는 여전히 '찬밥' 신세다. 화려한 발차기와 놀라운 파괴력으로 각광받지만, 정작 K-1이나 UFC 같은 이종격투기 대회에서 태권도를 베이스로 한 선수를 찾아보긴 쉽지 않다. 혹자는 이를 두고 정형화된 태권도는 실전에 약하다고 주장한다. 태권도는 정말 실전에 약한 걸까.

◆이종격투기의 변방, 태권도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16'.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태권V' 박용수(27)와 K-1 간판스타 제롬 르 밴너(36)의 8강전 경기가 펼쳐졌다. 박용수는 오른발 찍기 공격을 펼치며 밴너를 공략했다. 빠른 발놀림으로 링 주변을 돌며 끊임없이 밴너를 괴롭혔다. 하지만 경기는 맥없이 끝났다. 박용수가 왼발 로킥을 날리는 순간 밴너가 강한 오른손 펀치를 날렸고, 박용수는 카운트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서지 못했다. 1라운드 54초 만에 KO패. 앞서 8월 홍콩에서 열린 무사시와의 대결에서도 박용수는 KO패를 당하며 실력 차이를 절감했다.

현재 K-1 무대에서 태권도를 기반으로 싸우는 한국 선수는 박용수가 유일하다. 전일본 풀컨택트 태권도 선수권대회 챔피언 출신인 일본의 오자키 게이지(27)와 '러시아의 초신성'으로 불리는 루슬란 카라예프(26) 정도가 태권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최근 패배를 거듭하며 부진을 면치 못하는 형편이다.

반면 가라테는 위세를 떨치고 있다. 2005~2007년 K-1 그랑프리 3연패를 달성한 극강의 파이터 세미 슐츠(35)는 유럽 가라테 챔피언 출신이고, 최홍만의 트레이너로 유명한 '가라테 파이터' 김태영(38), 1997년 세계 가라테 챔피언십 우승자인 글라우베 페이토자(35·브라질) 등이 가라테를 베이스로 한다.

◆태권도, 실전에 약한 걸까

태권도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NGC)이 각종 무술과 무기의 파괴력을 분석한 '파이트 사이언스'를 보면 태권도의 주먹힘은 권투(450㎏)에 맞먹는 415㎏에 이른다. 반면 가라테는 370㎏, 쿵푸는 277㎏에 그쳤다. 특히 발차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태권도의 돌려차기는 파괴력이 710㎏으로 뼈가 부러지고 장기 손상을 받는 정도의 힘을 자랑했다. 태권도와 비슷한 당수는 460㎏의 충격으로 늑골을 손상시키는 정도였다.

그렇다면 태권도는 왜 종합격투기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격투기에 유용한 무술은 종합격투기의 룰 때문에 이득을 보는 것일 뿐, 무술 자체의 높고 낮음을 잴 수는 없다고 말한다. 발차기에 높은 점수가 매겨지는 태권도 룰에서는 당연히 태권도가 유리하고, 그래플링이 허용되는 종합격투기 룰이라면 종합격투기가 유리하다는 것. 특히 올림픽 종목으로 스포츠화된 태권도(WTF·세계태권도연맹)의 경우 주먹으로는 상대의 얼굴을 때릴 수 없고 웬만해서는 점수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련 과정에서 주먹 기술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접근전과 가드에서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실제 박용수는 K-1 진출 후 양손으로 안면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지만, 스텝을 밟거나 발차기를 할 때는 습관적으로 가드가 내려가는 버릇이 남아 있었다. 무사시와 밴너 등 노련한 파이터는 이를 놓치지 않고 박용수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또한 상대에게 충격을 주기보다는 발차기로 점수를 딸 수 있는 한정된 부위만 공격하기 때문에 태권도만으로는 공격의 다양성이 부족하다. 박용수는 밴너와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손을 올려서 얼굴을 꼼꼼히 방어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가드가 내려와 펀치를 허용했다"며 "스파링을 하면서 연습했는데 습관인 것 같다"고 말했다.

◆태권도가 종합격투기에서 성공하려면

전문가들은 태권도의 파괴력과 스피드는 종합격투기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안면 타격과 가드 등 기술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 최근 종합격투기 선수와 국제태권도연맹(ITF) 현역 선수들이 맞붙은 '세계태권도문화축제'는 이를 증명한다. 실전태권도로 불리는 ITF 태권도는 손과 발에만 보호대를 착용하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릴 수 있다. ITF태권도 룰과 종합격투기 룰로 나뉘어 열린 이날 경기에서 종합격투기와 태권도 전적은 4대 3으로 호각세를 보였다. 김기문 ITF 태권도연맹 영남본부장은 "정규 종목화된 태권도는 스피드와 타점 위주로 수련을 하기 때문에 종합격투기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다"며 "ITF태권도는 손기술에도 점수가 부여되고 가드를 올리는 등 이종격투기처럼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태권도의 일부 기술의 유려함과 파괴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잠재력이 있다는 얘기다. 태권도의 스텝과 발차기에 복싱을 조합하면 충분히 실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세계 톱클래스의 격투기 선수들도 태권도를 연마한다. 강력한 발차기 기술을 복싱, 킥복싱, 삼보, 무예타이 등 다른 무술과 접목시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인류 최강의 사나이'라 불리는 예멜리야넨코 표도르는 2006년 한국 방문 당시 태권도를 수련했다고 밝혔다. 표도르는 "태권도는 발차기 기술로 유명하며 미르코 크로캅과 대결하기 전에 네덜란드에서 태권도 연습을 했다"며 "모든 기술을 배웠는데 기초적으로 쓰고 있는 앞차기와 옆차기를 제일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 UFC 미들급 챔피언 앤더슨 실바(33·브라질)는 최근 미국 종합격투기 사이트인 'MMA 매드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무예타이, 복싱 등 많은 타격 기술을 배웠고 그 중엔 태권도도 있다"며 "태권도는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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