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대구'의 유령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고담대구'처럼 수년째 강렬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지역 비하도 없다. 범죄율이 타도시에 비해 높지 않은데도 '고담대구'라는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으니 억울한 일이다. 과연 대구는 정말 범죄와 몰염치, 비양심이 판치는 도시일까. '고담'이라는 각인은 왜 지워지지 않는 걸까.
◆대구 여행에는 보험이 필수?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지식검색에는 이런 황당한 질문이 떠돈다. Q:'대구로 여행을 가려 하는데 보험에 꼭 들어야 할까요?' 답도 가관이다. A:'대구는 워낙 범죄가 많아서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합니다. 보험회사에서도 안 받아준다고 하더군요.' '나는 자랑스런 고담대구 시민이다'라는 게시물은 대구 시민들을 몰염치하며 폭력적이라고 매도한다. 가령 사소한 시비가 벌어지면 대구에서는 무조건 주먹을 휘두르고 멱살잡이를 한 뒤에 경찰에 선처를 호소하고, 술에 취해 길에서 잠이 들었는데 경비원이 깨우면 "네가 뭔데 나를 깨우냐"며 멱살을 틀어쥔다는 식이다.
유독 대구에서 좀 크다 싶은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역시 고담대구'라는 비아냥 섞인 인터넷 댓글이 달린다. 대구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닌데도 누명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지난해 2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애인을 말다툼 끝에 토막 살해한 육군 중사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당시 피해자가 대구 출신인 탓에 피해자 가족이 대구 성서경찰서에서 신고했던 것임에도 일부 네티즌은 대구를 흉악도시로 비하했다.
대구에 '고담'이 붙기 시작한 건 2005년 인터넷 패러디사이트로 추정된다. 대구지하철 상인동 가스폭발사고(1995년), 지하철 방화 참사 사건(2003년) 등 대형 사고도 고담대구란 말을 유행시키는 주요 원인이 됐다. 지난 2006년 인터넷을 떠돌던 '올해의 엽기사건 베스트 9'는 고담대구 이미지 굳히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 가운데 엽기적인 것만을 짜깁기한 이 리스트는 당시 MBC 라디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통해 전파를 타면서 대구의 이미지를 비하시켰다.
◆정말 범죄의 도시일까
대구는 정말 범죄의 도시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 대구의 범죄 발생률은 여타 대도시에 비해 크게 높지 않다. '2007 대검 범죄분석'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대구의 범죄 발생 건수는 특별법범(이하 특) 5만1천596건, 형법범(이하 형) 3만8천930건으로 서울(특 19만2천377건·형 17만7천517건)과 부산(특 7만2천759건·형 5만9천300건), 인천(특 6만6천170건·형 4만7천996건)에 비해 낮다. 범죄 발생건수는 거주 인구의 수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생활과 가장 밀접한 범죄인 절도의 경우 대구는 9천785건으로 서울(2만8천963건), 부산(1만2천620건), 인천(1만2천813건)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등 5대 범죄 발생건수도 타 지역에 비해 높지 않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5대 범죄 발생건수는 2만5천517건으로 서울(10만7천380건), 부산(3만3천282건), 인천(2만9천824건)에 비해 적다. 인구 10만명당 범죄 발생 건수도 마찬가지다. 2007년의 경우 대구는 3천568건으로 전국 평균인 3천616건보다 낮다. 이는 인천(3천884건), 광주(4천199건)보다 낮은 수치다.
사실 마뜩잖은 별명은 대구에만 붙은 것은 아니다. '심시티서울' '라쿤광주' '갱스오브부산' '뉴올리언스수원' '마계인천' 등 전국적으로 15곳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생명력을 갖고 있는 별명은 '고담대구'가 거의 유일하다. 유독 '고담대구'라는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대구가 보인 정치적 경향성과 부정적 소문이 빨리 확산되는 인터넷 속성이 맞물렸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단순한 농담으로 시작됐던 별명이 보수적인 대구의 성향과 군사 정권 배출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맞물리면서 타지역민의 오해와 냉소를 일으켰다는 것.
정치적인 이슈가 번질 때에도 '고담대구'는 등장한다. 지난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진중권 교수가 주성영 의원에게 '대구의 밤문화…'를 언급하자, '역시 고담대구'라는 인터넷 댓글이 붙었다. 박한우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대구와 호남 모두 특정 정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면서도 유독 대구가 네티즌들로부터 욕을 먹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호남은 지금까지 권력에서 소외돼 왔다는 피해자의 이미지를 주는 반면, 대구는 권력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어떻게 풀어갈까
서울 위주의 뉴스만 소비되는 중앙지와 포털사이트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지역과 관련된 뉴스는 소외된 반면 중앙 정부 위주, 서울 중심의 뉴스만 소비되다 보니 지역의 뉴스는 오직 자극적인 사건·사고만 노출되고 있다는 것. 대구 경찰청 박종문 수사2계장은 "범죄 통계로 보면 대구는 대도시 중에서도 치안이 안정적인 편"이라며 "각종 매체에서 사건·사고 위주로 다루다 보니 사소한 사건도 확대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지난해 10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통해 38개 국내 주요포털사이트와 동영상 UCC업체, 언론사에 '고담대구' 등의 용어로 대구를 비하하거나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댓글이나 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으며, 네티즌 150명에게 자제를 요구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네티즌의 반발로 역풍을 맞았다. 이원재 대구시 홍보기획담당은 "농담인데 왜 대구만 유난스럽게 구느냐는 반발이 터져나왔다"며 "현재로는 무대응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대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확산은 지역 경제와 대외적인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박한우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상황이 이런데도 대구시는 여전히 이미지 마케팅과 같은 소프트웨어는 등한시한 채 산업적인 하드웨어만 쳐다본다"며 "외지인들에게 문화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담대구에 수긍하는 지역 젊은이들의 자조적인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보수적이고 변화에 더딘 지역 정서와 지역경제의 극심한 침체로 일자리가 제대로 없는 현실에 젊은이들이 실망하면서 인재 역외 유출이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건 대구에서 희망이나 비전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침체된 지역의 고용시장을 일으키는 등 지역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고담?=고담 시(gotham city)는 미국 DC코믹스사의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이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따온 말로 범죄와 부패, 사건·사고가 들끓는 어둠의 도시이며 배트맨의 활동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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