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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의 자리를 대신한 영화

약 100년쯤 전에는 공연 예술 중에서 가장 있기 있는 장르는 오페라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1700년경부터 1900년에 이르는 약 200여년 동안에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 문화권에서 오페라는 모든 예술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주목을 받는 분야였다.

사실 그 시대에 비한다면 지금의 오페라는 거의 죽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페라에 열광하고 새로운 오페라 작품의 탄생에 주목하던 그 많은 문화계의 시선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것은 그간 100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룬 영화라는 새 장르로 옮겨간 것 같다. 즉 당시 오페라의 자리를 지금 영화가 대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영화의 화려함과 세련미, 그리고 장대한 스케일을 본다면 이 말은 더욱 실감날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 특히 공연 예술이라는 분야에서는 가장 선두에 있는, 다시 말하자면 소위 '리딩 장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연극이었고 어느 나라의 한때는 발레였으며, 그 후로 오페라였던 적이 있었고, 그리고는 영화로 넘어간 것이다. 앞으로 그것이 어디로 갈지, 몇몇 인사들이 섣불리 추측하듯이 뮤지컬로 갈지, 판소리로 갈지, 컴퓨터 게임으로 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어찌되었거나 지금까지의 리딩 장르는 영화인 것이며, 영화는 과거 오페라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지금도 새 오페라는 창작되고 있을까? 물론 지금도 오페라는 새로 창작되고 있고, 과거의 명작들도 여전히 반복되면서 상연되고 있다. 그런데 왜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나 인기는 이전만 하지 못할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앞서 얘기했듯이 리딩 장르의 자리를 영화에 내어주었으므로, 가장 자질이 뛰어난 예술가들이 영화판으로 가버린 것이다. 즉 그들은 보다 각광을 받는 영화계에서 자신의 창작성을 나타나려고 한다. 과거에 소질 있는 젊은이들이 무조건 오페라하우스에 모여들던 시대가 아닌 것이다. 둘째, 그러므로 오페라계라는 세계가 영화처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술분야의 자본금조차도 영화나 뮤지컬 등에 집중되고 있다. 셋째, 지금도 적지 않은 새로운 오페라들이 작곡되고 있으며, 또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고 있다. 하지만 요즘의 현대 오페라라는 것이 19세기처럼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쉬운 작품들이 아니다. 현대 미술처럼 현대의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답거나 친절한 것만이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자리는 확실히 영화가 빼앗은 것 같다. 하지만 오페라는 많은 부분을 영화에 신세지고 있기도 하다. 즉 많은 영화 속에 오페라의 장면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화는 오페라의 예술성 높은 아리아나 음악들을 드라마 속에 사용함으로써,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또 자신의 격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오페라는 영화 속에서 등장할 수 있게 됨으로써, 오페라하우스를 찾지 않는 대중에게도 자신들의 가치를 알리며 대중적인 생명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영화와 오페라는 상호간의 대결 구도로 볼 필요는 더 이상 없어진 것 같다. 대신 오페라와 영화는 피차 서로 도와주는 상생의 관계로서 '오페라와 영화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문화 구도를 이루게 된 것이다.

박종호(정신과 전문의·오페라 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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