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우삼, 적벽대전에서 승리할 것인가

'삼국지'를 읽은 이들은 이 거대한 전쟁을 기억할 것이다. 서기 208년 위·촉·오 삼국의 영웅들이 전략 요충지인 적벽에서 벌인 사상 최대의 혈전이다.

할리우드에서 홍콩으로 돌아온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거대한 전쟁의 시작'은 조조(장풍의)의 80만 대군에 맞서기 위해 유비(우용)의 책사이자 지략가인 제갈량(금성무)과 손권(장첸)의 장수 주유(양조위)가 연맹을 맺고 적벽대전을 치르게 되는 과정을 그린 블록버스터다.

조조와 손권, 제갈량, 유비, 관우, 장비 등 손들어 누구 하나 영웅 아닌 이들이 없지만, 오우삼은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주유를 선택하고 '색·계'의 양조위에게 역할을 맡겼다.

주유는 오나라의 명신(名臣)이다. 주군인 손견이 죽은 후에 손책을 섬겨 양쯔장 하류를 평정했고, 동갑이었던 손책이 죽은 후에는 그의 동생 손권을 섬긴 충신이었다. 음악에 능하고, 성품이 온화하지만 강건하고 지혜로운 인물이다. 당대 미인 소교를 아내로 맞아 조조를 비롯한 영웅들의 시기를 받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도 출정한 조조가 소교의 초상을 두고 전의를 불태우자 신하들이 "이 전쟁이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일어난 것인가"라고 탄식하기도 한다.

'적벽대전'은 오우삼에게 여러모로 의미 깊은 프로젝트다. '영웅본색'(1986) 이후 촬영에 들어가려 했으나 거대한 예산과 기술 부족 등으로 20년 가까이 기다려온 작업이다.

장이모우, 첸 카이거 등 홍콩 감독들이 대부분 서사적인 역사물을 만들었으나 그에게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역사극이다. 거기에 홍콩을 비롯해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 등 5개국이 참여해 8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아시아 최고의 초대형 영화이기도 하다.

총 2부로 나뉘어 개봉될 '적벽대전'에서 '거대한 전쟁의 시작'은 말 그대로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본격적인 적벽대전의 예고편인 셈이다.

그래서 각 등장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황제를 좌지우지해 전쟁을 일으키는 간신 조조, 짚신을 말며 백성들을 돌보기에 헌신적인 유비, 앞날을 내다보는 책략가 제갈량, 온화한 성품의 주유 등 원작인 '삼국지연의'에 충실한 해석으로 일관한다. 긴 수염의 관우, 개장수 같은 장비, 날쌘 조자룡 등도 원작의 성격과 외모 그대로이다.

'적벽대전:거대한 전쟁의 시작'은 본격적인 대전에 앞서 육상전을 비중 있게 다뤘다. 위의 대군이 시시각각으로 진군해 오고, 보잘것없는 군사력의 유비와 대의명분을 따지는 손권이 결전을 다짐한다. 위의 1진을 촉과 오의 연합군이 팔괘진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대목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관우와 장비, 조자룡이 활약한다.

강을 가득 메운 조조의 함선들을 비롯해 적벽을 사이에 두고 감도는 양측의 전운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채색해 이제까지 나온 어떤 '삼국지' 영화보다 실감나는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오우삼 영화의 단골 오브제인 하얀 비둘기도 어김없이 나오는데, 주유 진영에서 출발한 비둘기가 강을 건너 위의 함선들 사이를 헤집고 조조 진영까지 이르는 장면은 사뭇 스펙터클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컴퓨터 그래픽은 서툰 면이 역력하다. 팔괘진도 사실감이 떨어지고, 그래픽으로 그린 동선과 실사 동선이 안 맞는 등 엉성하다. 영화보다는 사양 딸린 PC게임을 보는 듯하다.

등장인물들의 상투적인 묘사에 전투장면도 지루하다. 무엇보다 뭔가 터질 것 같으면 영화가 끝나고 '2편에 계속'이란 자막과 함께 마쳐버리는데, 아쉬움을 넘어 심지어 '사기 당한 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년 1월에 개봉하는 2편에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겠지만, 시간 늘리기 식으로 2부작을 만드느니 차라리 3시간짜리 영화 한 편으로 만들었으면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반지의 제왕'을 염두에 두고 오우삼은 이렇게 말했다. "영상을 다루는 기술이나 CG(컴퓨터그래픽)를 다루는 능력으로 볼 때 영화의 질감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단순히 액션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동양의 정신이나 문화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차별된다"고 했다.

적어도 1편만 봤을 때는 동양의 정신이나 문화라는 측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을 따라가며 여러 등장인물들이 처한 제각각의 사건들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필생의 작업이면서도 맺고 끊는 오우삼 특유의 연출이 빛을 발하지 않는다. 묘사할 것은 많고, 버릴 것은 없고, 거기에 여전히 기술은 부족한 전쟁 블록버스터다. 132분짜리 예고편 치고는 비싸고 길다. 15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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