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한 잡지' 다 어디로 갔나…성인잡지의 몰락

금지된 것일수록 유혹을 부른다. 하지 말라는 것은 더 재미있는 법이다. 이런 명제를 가장 잘 만족시키는 것으로 성인잡지만한 것이 있을까? '야한 잡지'라는 말이 더 친숙하고, '빨간 책'으로 통칭되던 성인잡지는 19세(예전에는 20세) 이하 청소년들에게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아무 거리낌 없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적으로 음란한 내용을 담은 잡지'라는 뜻의 '도색잡지(桃色雜誌)'로 매도당하는 것도 바로 성인잡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스무살 남자를 키운 것 중의 일부는 성인잡지일 터이다. '선데이 서울' '핫윈드'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그렇게 삶의 일부를 차지했던 성인잡지들은 요즘 어디로 갔을까?

◆성인용품점에서도 구색만

예전에 헌책방이나 외국서점은 야한 잡지의 주요 공급처 중 하나였다. 그 가운데 대구역 지하차도는 대구에서 야한 잡지를 가장 많이 팔던 서점들이 몰려 있었다. 최모(31)씨는 "대구역 지하차도에 있는 헌책방에서 도색잡지를 샀다는 친구 얘기를 들었다. 책방 아저씨가 처음에는 없다고 하다가 계속 '좋은 거 거센(?)거 있어요?' 하면 비밀의 문을 열고 도서류와 영상물을 보여주고 판매했다더라"라고 말했다. 대구역 근처에 위치한 고등학교 졸업자들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그러나 요즘 그곳엔 야한 잡지가 없다.

지난주 초 대구역 지하차도를 찾았다. 외국서적 전문점 간판은 남아 있었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살짝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게 주인의 "더 이상 그런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혹시나 해서 길 건너 성인용품점에 들렀다. 창가에 몇 권의 외국 성인잡지를 진열해 놓은 곳이었다. 이곳에도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몇몇 성인용품만 아무렇게나 놓인 것을 보아하니 장사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한참 후에 찾아온 가게 주인 이모씨는 "전 주인이 장사가 되지 않아서 내놓은 걸 인수받아 놀리고 있다. 찾는 사람도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대체 성인잡지는 어디에서 팔고 있을까?

이모씨는 다른 성인용품 집에 가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야 성인잡지만 팔아도 먹고사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 장사가 안 된다. 성인용품점에도 구색만 갖춰 놓았을 뿐"이라고 알려줬다. 대구시청 근처 헌책방 거리에서 일부 성인잡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 과월호였다. '스파크(SPARK)'니 '열혈남아(熱血男兒)', '펜트우먼' 같은 '성인잡지스러운' 명칭을 한 헌 잡지였다. 주인은 "총판 등에서 철 지난 것을 가져온다"고 했다. 포장지가 그대로 싸여 있는 것이 새책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성인잡지가 안 팔린다는 방증이었다.

버스터미널에서도 성인잡지를 구경할 수 있다. 지난 10일 찾은 동부정류장이나 동대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일부 성인잡지가 진열되어 있었다. 물론 여기서도 성인잡지는 '찬밥' 신세였다. 인근 편의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사람으로 치면 '목숨만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인 셈이었다.

◆인터넷 때문에 명맥만 겨우 유지

인터넷을 통하면 못 구하는 것이 없어진 시대, 성인잡지도 인터넷 쇼핑몰 구매 목록에 올라 있다. 그런데 찾기가 쉽진 않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성인용품 쇼핑몰은 20여개. 일일이 확인을 해 보니 성인잡지 목록이 있는 곳은 쇼핑몰 단 한 군데였다. 그것도 과월호뿐이다. 쇼핑몰 관계자는 "물건이 나가기는 하지만 많이 찾지는 않는다. 구색 맞추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성인잡지의 몰락은 현재 발행되고 있는 성인잡지 종수를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잡지협회에 따르면 현재 발행되고 있는 '성인오락지'는 월간지 13종(계간지 2종 포함)이 전부다. 이 가운데 화보가 포함된 것은 잡지 하나뿐이라는 것이 납본실 직원의 전언이다. 예전에는 20여종이 족히 넘었다. ㅅ잡지 발행사 관계자도 "잡지는 전반적으로 판매부수가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우리는 출판사라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매달 잡지를 못 내는 곳도 많다"고 했다.

성인잡지 몰락의 원인은 인터넷이다. 성인잡지가 해온 '성의 분출구'로서의 역할을 인터넷이 떠안은 까닭이다. 이젠 누구나 클릭 한번으로 성인잡지 사진보다 수십 배는 더 야한 사진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나아가 '야동'(야한 동영상)도 손쉽게 찾을 수 있으니 굳이 성인잡지를 사 볼 필요가 없어진 탓이다. 고교생들도 PMP(휴대형 멀티미디어 재생기)나 전자사전 동영상 기능을 이용해 야한 동영상을 본다고 하니 이야기는 끝난 셈이다.

성적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동물적 본능은 여전하지만 그 해소법은 첨단을 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마저도 30대 이상의 성인들에게 하나의 추억거리로만 남게 됐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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