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 이준 열사 순국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통치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이에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준 열사는 1907년 4월 22일 헤이그특사로 서울을 출발해 러시아에서 이상설, 이위종과 합류,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했다. 특사단은 만국평화회의 의장에게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제시하고 대회 참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열국의 방관과 일제의 방해공작으로 회의 참석과 발언이 거부당했다. 세 특사는 할 수 없이 각국 대표에게 호소문을 보내고 신문을 통해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국 대표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1907년 7월 14일 이준은 통분을 참지 못하고 헤이그에서 憤死(분사)했다. 다음날 네덜란드 일간지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잔인한 탄압에 항거하기 위해 이상설, 이위종과 같이 온 이준씨가 어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이듬해 헤이그 공동묘지에 있던 그의 유해를 서울 수유리에 안장했다.

▶1789년 프랑스 바스티유 감옥 습격 ▶1908년 시인 유치환 출생

정보관리부 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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