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수학 시간, 칠판에 '평행사변형 넓이를 구하는 방법을 알아보자'라고 공부할 주제가 큼직하게 쓰여 있다. 아이들은 모눈 종이에 그려진 평행사변형 안에 들어있는 작은 네모가 몇 개이고, 반으로 잘려진 세모는 몇 개인지 세어보느라 정신이 없다.
"어어? 평행사변형과 직사각형이 똑같잖아!" 이런 말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선생님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그저 아이들 사이로 다니면서 활동이 뒤처진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다.
첫 번째 활동에 이어 모둠 활동이다. '어떻게 하면 평행사변형에서 어느 한 부분을 잘라 그것을 이동시켜 직사각형을 만들 수 있을까'를 의논해 평행사변형을 만드는 활동이다. "어어, 직사각형이 되었네?" "저런! 어째서 그럴까?" 아이들은 신기해서 못 견디는데 선생님은 자꾸만 아이들에게 궁금증을 부추기기만 한다.
교실은 시끌시끌하다. 방법을 의논하고, 종이를 자르고 붙이느라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그러나 그게 결코 다른 모둠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모둠 활동하느라고 다른 모둠이 무엇을 하든지 상관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우리 학교 5학년 수업 공개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보았다. 공부는 이처럼 재미가 있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만화 영화를 보는 그런 재미가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또 다른 재미 말이다. 모르는 세계를 탐구해가는 공부, 그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초등학생이 무슨 재미를 가지고 공부를 해. 그저 어른이 어르고 닦달해서 시켜야 하는 것이지." 이런 생각을 한다면 공부도 너무 모르고 아이도 너무 모르는 사람이다.
공부를 1, 2년 하고 말 게 아니다. 초등학생은 수십 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 지금 몇 개를 더 아느냐가 뭐 그리 중요한가. 지금 몇 점을 받고, 학급에서 몇 등 하느냐보다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하는 일이 열 배, 아니 백 배 더 중요하다.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나면 그렇게 바라고 바라는 점수도, 등수도 자연스레 뒤따른다.
우리 아이의 학교생활이 즐겁도록 하자면 어떻게 해 줘야 할까. 학년에 맞춰 놓은 학교 교육과정을 믿고 또 믿어야 한다. 성급하게 미리 선행학습을 시켜 교실로 보내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찾아내는 기쁨, 탐구해가는 희열감을 빼앗지 말고 아이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단위 학습에서 만끽하는 공부의 기쁨이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는 바탕이다. 재미가 바로 공부의 구구단인 셈이다.
2단원을 배울 때 2단원 공부를 학교에서 만나게 하고, 3학년 교실에서는 3학년 공부를 하도록 하면 아이들은 즐겁다. 수준에 따라 앞서 가는 아이는 단계를 뛰어넘어 가도록 할 것이 아니라 그 단계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즐기도록 하자. 3학년을 서둘러 4학년, 5학년으로 만들지 말고 깊이 있는 3학년으로 만들자. 그것이 바로 발전학습이다. 얼마든지 깊게, 넓게 들어갈 수 있는 독서가 바로 발전학습의 본보기다.
어릴 때 억지로 올린 점수는 한때의 기쁜 추억이지만, 어릴 때 즐거움으로 몸에 밴 공부 습관은 평생 동안 삶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 분명하다. 재능은 노력을 못 당하고, 노력은 즐거움에 못 당한다.
윤태규(대구 남동초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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