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통비·밥값 빼면 하루 용돈 1,2천원 남아요"

[중산층이 무너진다] ①중소직장인의 처참한 일상

초고유가의 충격으로 한국경제가 위기로 치달으면서 중산층 몰락이 가속화하고 있다.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지만 여의치 않다. 내수의 주축인 직장인과 자영업자가 주저앉고 은퇴자는 마이너스 이자소득으로 생계 유지가 안 된다. 이 때문에 3대 경제주체인 가계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다시 무너지는 중산층의 현주소를 4회에 걸쳐 진단한다.

한달 실질 수령 월급이 230만원인 C(48)씨. 직장 생활 20년차로 4인 가족 가장인 그는 2개월에 한번씩 나오는 보너스를 합치면 한달에 340만원을 집에 가져간다. 만족할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감사해 하며 회사 일에 열중했다. 그런 그가 최근 의욕을 잃고 있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매출이 급감하는 바람에 회사의 앞날이 불투명해졌기 때문. 집사람에겐 보너스가 안나올지 모르니 씀씀이를 줄이라고 일러 두었지만 줄일 부분이 없다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본인 역시 하루 1만원씩 받는 용돈을 줄이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마저 불가능하다. 교통비와 점심값을 제외하면 여윳돈은 1천~2천원. 동료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약속이 있다며 슬그머니 나가서 인근 재래시장에서 2천원짜리 보리밥을 사먹는다. 그것도 최근 2천500원으로 올라버려 가끔은 300원짜리 호떡 3개로 견디기도 한다. 그를 더욱 암담하게 하는 것은 앞으로 회사 사정이 언제 나아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20대80(가진자 20%, 못가진자 80%)의 사회가 공고화되더니 이제는 10대90의 사회로 들어섰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산층의 가장 주축 세대라고 할 수 있는 40, 50대 가운데 봉급생활자들의 생존여건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우선 통계로 중산층이 줄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해 총소득 기준 중산층 비중이 62.7%로 전년보다 0.6%포인트 감소했다. 중산층의 가족 월평균 소득의 합을 167만~500만원(OECD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중산층 가구 비중은 1992년 75.2%까지 치솟았다가 계속 감소해 외환위기 직후인 99년 65.5%까지 떨어졌다. 이후 약간 회복했지만 다시 60% 초반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빈곤층은 7.7%에서 지난해는 14.4%까지 늘었다. 대다수 중산층이 상류층(중위 소득의 150% 초과)으로 이동하는 대신 빈곤층으로 추락했다는 뜻이다.

실질적으론 이보다 훨씬 더 축소됐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40대 중반의 직장인 B씨는 작년까지만해도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요즘은 퇴근 후 대리운전 기사를 한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일하며 하루 대리운전비로 버는 돈은 2만원안팎. 잘하면 하루 4번 손님을 모시지만 택시비와 야식값, 회사에 내는 수수료를 제하면 이 정도도 많은 편이다.

지난해까지 휴일근무를 합쳐 월급 250만원가량을 받아 그럭저럭 살았지만 올해부터 고교 및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 2명의 학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자신은 대리운전, 아내는 식당 일을 시작한 것. 좋아하는 술도 끊은 그는 일을 마치고 들어갈 때는 눈물이 난다고 했다. 잠은 3~4시간이 고작이다.

급여만 갖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증권에 투자했다가 원금 회수는 고사하고 이자까지 무는 직장인들도 수두룩하다. K(45·대구시 북구 침산동)씨가 좋은 사례. 그는 10년 동안 아내 몰래 어렵게 모은 종자돈과 대출받은 돈을 합쳐 3천만원으로 지난해 10월 중국 및 인도 펀드에 가입했다. 현재 잔고는 합쳐 1천640만원. 해약하고 싶지만 억울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목돈을 만들어 제대로 가장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만 월 15만원 정도 나가다 보니 속이 시커멓게 타고 있다.

사회의 성장동력으로, 우리 사회의 버팀목으로 활동해 왔는데 어느샌가 역할을 해도 아무런 보람이 없고 보상이 없어져 버린 중소기업 직장인들의 하루가 고달프다.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급여 인상은 꿈도 못꾸고 오히려 지금 받는 임금을 깎여야 할 처지에 놓인 상당수 이들 직장인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풍전등화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 속에서 생활비를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사회에 대한 분노로 작용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고액 연봉을 받는 공기업이나 대기업, 금융회사, 불경기라고 해도 쫓겨나거나 급여가 깎일 염려가 없는 공무원 등이 걸핏하면 집단 이기주의적인 목소리를 내세울 때면 부러움을 떠나 적개심마저 느끼기도 했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인 중산층들은 부동산과 금융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심리적 위축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정부는 물가안정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고 고용을 안정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산층이 붕괴하는 이유는 경기 침체와 고용불안이 원인이다. 경기가 좋으면 중산층 소득도 늘고 빈곤층의 중산층 진입도 빠르게 진행되지만 경기가 하락하면 자영업 구조조정 등으로 중산층이 줄어들기 때문. 전통적 가족의 해체로 홀로 사는 노인 등 빈곤한 1인가구가 늘어난 것도 중산층 관련 지수 악화에 한몫했다.

이재훈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역에서는 이제 연봉 5천만~1억원 정도의 중산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서 "정부는 중산층의 살 길을 마련하기 위해 기름값을 안정시키고 소상공인이 창업할 수 있도록 저금리의 생계형 소액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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