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허공은 입이 없다/김현옥

천지 사방 허공뿐이니

파도나 피워대던 심심한 바다가

허공에게 말을 건다,

심심하지 않니? 바람이나 피우지 그래

그러나 허공은 농담할 입이 없다

입도 없고 문도 길도 없다

들어오고 싶으면 오고

나가고 싶으면 가도 된다는 텅 빈 표정뿐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이

새처럼 허공을 맴돌다가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허공은 싫다고 내뱉을 입이 없다

입도 없고 추스릴 마음도 없다

그러나 우주만물 다 껴안을 품은 있다

깡그리 다 껴안고도 널널할 허공은

그러나 입이 없다

입 없는 것들이 어디 허공뿐이랴. 꽃도, 물도, 돌도 다 입이 없다. 입이 없으므로 꽃은 색깔로 마음을 표현하고, 물은 잔물결로 심정을 대변하고, 돌은 부딪치는 소리로 제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허공은 마음도 심정도 감정도 없으므로 늘 "텅 빈 표정뿐"이다. 하지만 정말 허공이라고 어찌 하고 싶은 말이 없을까. 하고 싶은 말은 바람에게 부탁하고, 표정은 둥실 떠가는 흰 구름에 맡기고, 노래는 솟구치는 새의 날갯짓에 얹어둔다.

사랑도 꿈도 만사 다 싫고 싫은 날은 입 없는 허공에 나를 방기(放棄)하고 싶구나. 그 품에 안기고 싶구나. 입도 없고 추스를 마음도 없지만 우주만물 다 껴안을 그 널널한 품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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