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나를 깨운 것은 뉴스 앵커의 목소리였다.
'1986년의 크뤼트네와 2002년의 J○○2E2를 기억하십니까? 어제 저녁, 제2의 달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달은 오직 하나일 때 달이다. 여럿이라면 다른 이름이어야 한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는 '달'이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듯,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달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달이 두 개라니!'
달은 또 하나의 달을 복제해놓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떠 있었다. 하늘에 달 하나가 더 생겨나자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 변화를 시작했다. 이상증세를 호소하는 사람, 드디어 무중력의 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며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우주적 체위의 섹스를 하는 사람, 무중력 판타지 섹스머신을 파는 사람, 두통 치통 소화불량 각종 강박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병원 문턱이 닳도록 성시를 이뤘다. 자다가 몸이 붕 떠오르는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백화점은 지구의 몰락이 임박했다며 '지구종말 대 바겐세일'을 시작했다. 그 옆의 백화점은 '새로운 우주로 도약하며, 대 바겐세일'을 시작했다. 무중력 증후군자들은 곳곳에서 집회를 열었고, 거리 곳곳에서 '문 워크'로 걷는 사람들도 보였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종일 새로운 달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세상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이제야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상이 올 것'이라는 사람도 등장했다.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한 달 뒤에 생겨난 세 번째 달이었다. 달 두 개도 모자라, 세 번째 달이 생겨난 것이다. 중력은 그만큼 더 힘을 잃었고 무중력은 그만큼 힘을 얻었다. 무중력 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무중력 세상을 꿈꾸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은 땅바닥에 흰 '데스마크'를 남겨둔 채 죽었다. 그들이 남긴 것은 경찰이 하얀 페인트로 표시한 '데스마크'였다. 그들은 진짜 무중력의 세상으로 가버린 듯 흰 페인트 자국만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5천만원 고료 제13회 한겨레 문학상 당선작 '무중력 증후군'은 일상의 무거움, 가벼움과 서글픔, 웃음에 관한 이야기다.
노시보는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8군데 회사를 다녔다. 그 중 4곳은 회사가 망해서 그만뒀고, 2곳은 미래가 없는 곳이었고, 한 곳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없어서 그만두었다. 마지막 한 곳은 '세상에 있는 것만 파는 곳'이라서 다니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였다. 부동산 중개업소는 세상에 있는 것, 그러니까 땅만 팔았다. 그러니 세상에 없는 무엇을 쥐어 짜낼 필요는 전혀 없었다. 노시보는 여태까지 단 1평의 땅도 파는 데 성공하지 못했지만 출근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었다.
노시보는 출근해서 하루 종일 전화를 건다. 전화번호부를 펴놓고 '기역'부터 시작했다. 50분 동안 미지의 고객에게 전화를 걸고 10분 휴식 시간엔 각종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뉴스를 체크한다. 단 하나의 뉴스도 놓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현대인의 필수조건이다. 노시보는 또한 현대인답게 각종 강박증에 시달린다. 그는 소소한 통증과 호흡곤란 등으로 병원을 제 집처럼 들락거린다.
어느 날 노시보에게 잡지사 '심플라이프' 여기자 송영주(별명 퓰리처)의 전화가 온다. 퓰리처는 '현대인과 병'을 주제로 노시보를 취재하고 싶다고 말한다. 심플라이프에서 제공하는 건강 검진권으로 각종 질병을 진단, 치료하며 그 과정을 취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시보가 취재대상이 된 것은 '최근 6개월 간 병원방문 횟수가 90회 이상이며, 5가지 이상의 병세로 방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병이 완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차례 검진을 받았고 퓰리처는 노시보가 앓고 있는 병이 '무중력 증후군'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이미 작성한 두툼한 원고를 보여준다.
"이건 뉴스가 아니라 소설 같은데요?"
"원래 모든 소설은 뉴스에서 시작해요."
"사실이 아니잖아요?"
퓰리처는 언론에 실리면 사실이 된다고 말한다. 퓰리처는 타이밍에 맞춰 기사를 내놓았고, 이제 모든 뉴스는 '무중력 증후군'으로 가득 찼다. 병원의 의사들은 노시보의 증상을 '무중력 증후군'이라고 진단했다. 인터넷에는 '무중력 증후군'에 관한 자가진단 항목이 늘 대기했다.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났고 의사협회에서는 각 회사와 학교마다 '무중력 증후군 자가진단법'이라는 지침을 붙이도록 권유했다.
무중력 역시 중력(관성 혹은 일상)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달은 한 달에 한 개씩 늘어나 3개, 4개, 5개, 6개로 늘어났다. 달의 번식과 더불어 무중력 증후군은 급속도로 뻗어나갔다. 이제 달이 늘어나는 것은 두려운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일곱 번째 떠오를 달은 '럭키 문'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럭키 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예정돼 있던 날, 일곱 번째 달은 떠오르지 않았고, 여섯 번째, 다섯 번째, 네 번째 달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하늘에는 달이 하나밖에 없었다. 공포로 시작된 달의 번식은, 환락의 지경에 이르자 사라졌다.
노시보는 여전히 숨이 차고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몸은 중력을 거스르며 위로 솟아오르려고 했다. 오전 근무를 마친 그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노시보를 '무중력 증후군'으로 진단했던 의사는 말했다.
"무중력 증후군은 완치됐습니다. 더 이상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뭐가 잘못됐나요?"
"그거 끝났어요."
"끝나다니요?"
"처음부터 그런 병은 없었어요."
"병을 진단하신 것은 선생님이잖아요?"
"뉴스를 좀 보세요. 우리가 다 속았다, 그겁니다."
"누구한테요?"
의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퓰리처의 '무중력 증후군' 기사가 혼란을 부추겼지만 퓰리처가 원인은 아니다. 기자 송영주는 다만 타이밍에 맞춰 '세상의 흐름에 물타기'를 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속인 사람도 속은 사람도 모두 우리라고 해야 한다.)
무중력 증후군으로 특종을 터트린 퓰리처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현대인과 병'을 끝내고 다른 걸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3위로 퓰리처의 새로운 발명품 '만년필 증후군'이 올라와 있었다.
작가는 "현미경으로 양파의 단면을 들여다보던 순간을 기억한다. 확대된 양파의 단면에는 양파 아닌 것들이 가득했다. 흐느적거리는 실선, 둥둥 떠다니는 기포…. 현미경의 친절함은 곧 노련한 거짓말이다. 렌즈에 눈을 갖다 댄 순간 양파는 사라지고 새로운 무대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심사위원들로부터 '붕 뜬 것 같으면서도 땅에 두 발을 딱 붙이고 있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가는 엉뚱한 상상력과 촘촘하게 짜여진 구조, 농담과 은유로 한국사회를 헤집고 풍자한다. 25세 남자 노시보와 그 가족, 직장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작가는 여성이다. 소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성에 관한 여성의 노골적이고 심도 있는 심리묘사'는 여성 작가이기에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296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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