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에 뛰는 물가로 서민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자영업자들의 '신음'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원가는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지만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면서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해 영세민 수준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31%로 OECD 국가 중 세계 최고 수준. 직장인과 함께 중산층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결국 한국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빛좋은 개살구
대구의 한 쇼핑몰에서 3년째 의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40)씨. 종업원 2명에 매장 면적이 60여㎡로 남 보기엔 그럴듯한 사장님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일용직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한 달에 200만원 벌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돈도 주말 없이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한 내 일당이고요." 김씨의 장부를 살펴보면 그의 푸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달 평균 매출은 3천여만원으로 브랜드사에 납입하는 옷값과 월세, 전기료를 빼고 나면 매출의 20% 정도인 600만원이 남는다. 여기서 종업원 2명 인건비로 지출되는 돈이 270만원이며 가게 회식비와 음료수비 등으로 나가는 돈이 월 30만원 정도라는 것이 김씨의 설명.
그러나 나머지 300만원도 모두 김씨의 몫이 아니다. 영업에 필요한 차량 유지비와 본인 밥값 등을 빼고 나면 집에 200만원 가져다 주기가 벅찬 형편이다.
그나마 김씨는 나은 편. 아예 장사가 안돼 종업원을 줄이고 혼자 일하다가 결국은 폐업신고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구시내 재래시장 중 상당수가 폐업으로 문을 닫고 있는 실정.
회사를 다니다 명예퇴직하고 대구 지산동에서 삼겹살집을 차렸던 최모(53)씨. 작년 말 퇴직금과 빌린 돈을 합쳐 2억원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1년 계약 만료일만 기다리고 있다. 하루 30만원 정도 오르던 매출이 6만∼7만원으로 떨어져 도저히 운영이 안돼 그만두려고 하지만 보증금을 받아낼 수가 없어서다.
직장인에서 자영업자로 전환하는 경우가 대거 늘어나면서 자영업자끼리 '제살 깎기'식 경쟁을 하다보니 빈곤의 악순환만 되풀이된다.
경북대 사회학과 김규원 교수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의 경우 그나마 지원제도가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중산층의 삶의 질 하락에 대한 사회적 지원책이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산층이 일시적이나마 어려워지더라도 재교육이나 창업지원 등을 통해 그곳에 머무르도록 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장치가 없다는 것.
대표적인 자영업자로 꼽히던 개인택시 기사들은 이미 몰락한 중산층이다. 택시기사 정모(59)씨는 1년 전 3천900만원을 주고 면허를 사서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LPG가격이 치솟으면서 하루 운송 수입금 7만~9만원 중 절반은 연료비로 나간다. 나머지 돈을 갖고 차량 유지비 등에 충당하면 집에 갖고 가는 돈은 2만~3만원선. 정씨는 "나이 60이 다 돼서 시작했으니 망정이지 30, 40대는 할 게 못 된다"며 "솔직히 외국인 근로자보다 못한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중산층에서 탈락하는 자영업자
고유가 직격탄이 자영업자들에게 미치는 충격은 수치에서 쉽게 드러난다. 현금 사용량이 최근 들어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대구지방국세청에 따르면 올 2/4분기 현금 영수증 발급 금액이 제도 도입 4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 영수증 사용업소와 발급을 요구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지난 1/4분기까지 20~30%씩 발급금액이 꾸준히 상승해 왔지만 고유가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4월부터 현금 영수증 발급 금액이 점차 줄기 시작한 것.
현금 영수증 발급 금액은 도입 첫해인 2005년 대구경북 지역 내 발급 금액이 1조4천610억원을 시작으로 2006년 2조4천560억원, 2007년에는 3조9천150억원 등으로 해마다 고성장을 거듭해 왔으며 올 1/4분기도 1조 95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천900여억원이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동기와 비교할 때 4월은 100%로 제자리를 보인 뒤 5월과 6월은 각각 98%, 97%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현금 영수증 증가치를 감안한다면 실제 업소에서 지출하는 현금은 큰 폭으로 줄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며 "문제는 감소 수치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또 자영업자의 수입과 직접적 상관 관계가 있는 서비스업생산 증가율도 지난 1월 6.3%에서 4월에는 5.9%로 떨어졌다.
고유가의 파고가 서민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5월 이후 서비스업 생산 지표는 물가 부담증가와 실질소득 감소로 더 악화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최경수 선임연구위원은 "서민경제 위축과 대형점포 등장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이 고유가에 물가상승이라는 '쌍끌이 암초'를 만나 위기에 몰리고 있다"며 "사회통합 차원에서도 이들에 대한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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