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물산업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수에즈(Suez)는 1990년대 중반 종합금융그룹에서 물 전문기업으로 거듭난다. 물론 과거에도 수에즈운하 건설 등 물 산업에 꾸준히 참여해 왔지만 회사의 장기 성장비전을 물에서 찾은 것은 그 안정성 때문이다.
수에즈뿐 아니라 GE, 지멘스 같은 글로벌기업들이 잇따라 물 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물 산업이 '물 먹을 일' 없는 사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푸른 금맥'을 찾아 나선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누가 뛰고 있나
물산업에 적극적인 국내 업체로는 두산중공업·코오롱·태영·한화건설 등이 꼽힌다. 우선 두산중공업은 해수담수화 부문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 시장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3월 쿠웨이트에서 3억2천만달러 규모의 대형 역삼투압 방식 담수플랜트 공사를 수주하는 등 해외실적이 20여건에 이른다. 특히 지난 5월에는 하수·폐수 재활용을 포함한 일반 수처리 사업에 진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다고 밝혀 주목받고 있다.
물 산업과 관련, 최근 가장 바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코오롱그룹. 2006년 환경시설관리공사를 인수하면서 물 산업에 뛰어든 코오롱은 2015년까지 관련 매출 2조원을 달성, 세계 10대 물기업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상하수도 전문기업인 차이나 워터어페어 그룹과 합작법인도 설립했으며 최근 총 사업비 529억원의 울진군 하수관거정비 임대형 민자사업(BTL) 시행자로 지정됐다.
태영건설은 하수처리장 운영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하수·폐수처리시설 57곳, 정수처리시설 49곳, 상하수도 관거 113곳을 준공, 국내 최대 시공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태영건설 홍보팀 염석배 과장은 "민간에 위탁된 국내 하수처리장 192곳 가운데 58곳을 운영하고 있다"라며 "물산업전략팀을 신설해 요르단·레바논 등 해외시장 진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화건설도 물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 2월 사업비 560억원의 인천 검단하수종말처리시설을 준공했으며 내년 5월 완공 목표로 경기도 양주 신천·장흥·송추지역 하수처리장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밖에 현대엔지니어링은 아프리카 적도기니,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서 상수도·하수처리시설사업을 벌이고 있다.
물 관련 공기업인 한국수자원공사도 10여년 전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분주하다. 지난 2006년 적도기니 최초의 상수도사업인 몽고모시지역 상수도시설 운영권을 수주하는 등 인도네시아·멕시코·네팔·오만 등 전 세계에서 13건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수자원공사 해외사업처 이복영 사업기획차장은 "초기에는 타당성 조사나 설계 등 주로 컨설팅에 중점을 뒀지만 부가가치 향상을 위해 개발형 투자사업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물산업 육성대책
국내외 물 시장환경 변화에 맞춰 정부도 물산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지난해 6월 환경부에 물산업육성과를 신설하는 등 여러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물에 대한 인식이 공공재에서 경제재로 바뀌고 있는 추세에 맞춰 규제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연관산업 육성, 우수인력 양성, 기업의 해외수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 물산업육성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앞서 노무현 정부에서도 2006년 2월 물산업 육성방안을 내놓고 이를 구체화해 2007년 7월 물산업 육성 5개년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정부 계획의 주요 내용은 현재 연간 11조원 수준인 국내 물산업 시장을 2015년까지 20조원으로 성장시키고 세계 10위권 물기업 2개를 육성한다는 것. 또 현재 164개 지방자치단체가 나눠 운영하고 있는 상하수도 사업을 30개 정도의 유역권역으로 광역화하고 2012년까지 사업주체도 공사화 혹은 민간위탁할 방침이다.
하지만 상하수도 사업의 영세성을 극복, 규모의 경제를 만들겠다는 정부 방침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겉으로는 물산업 육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상하수도 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이현곤 경북도 상수도업무 총괄담당은 "정부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범국가적 차원의 의견 통합이 선행되어야 하며 국민의 오해와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며 "개방화, 세계화가 불가피하다면 사업자에 대한 구체적 감독시스템, 규제규정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물산업 성장 가능성
지난해 2월 수자원공사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수도시설 운영관리 프로젝트에 입찰했다가 쓴맛을 봤다. 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 등 전 세계 11개국 15개 컨소시엄이 참여한 입찰 참가자격 사전심사(Pre-Qualificatin)조차 통과하지 못한 것. 상하수도 시설 운영관리 실적 부족, 소비자 서비스 경험 미흡 등이 이유였다.
사실 국내 물산업의 해외진출은 해수담수화, 상하수도 및 폐수처리 기자재, 수로 건설 등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 핵심분야인 상하수도 운영관리 및 서비스 제공은 실적이 제로에 가깝다.
이와 관련, 수자원공사 수자원정책경제연구소 권형준 소장은 "해외진출을 위해선 상하수도사업을 동시에 맡을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며 "아직 초기단계인 한국의 경우 공기업은 신인도를 활용해 운영관리서비스 역할을 담당하고 민간기업은 설계·시공·설비 등에 참여한다면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조용완 현대엔지니어링 상무는 "해외시장 진출이 늘고 있지만 경험과 현지 법규 등 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이 크다"며 "공적자금의 지원범위를 확대해 거대 물 선진기업에 대응할 수 있는 국내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는 서울 뚝도정수장의 통수로 시작된 국내 상수도산업이 100년을 맞는 해다.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대적 시설확충사업에 나서 상수도 보급 90%, 하수도 보급 80%를 넘어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이제는 눈을 해외로 돌려야 한다. 당연히 국제 경쟁력 향상이 관건이지만 국내 물산업의 성장 잠재력은 풍부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물 관련 연구인력이나 기술개발 기반이 성숙돼 있는데다 무엇보다 중국과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 물시장이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국내 물산업이 국부 창출 및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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