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지자체 "이웃 구청 아이디어 배아프다"

▲ 대구의 구청들이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내놓아 전국 지자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 위로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중구청 직원들, 최근 담장을 허문 수성경찰서, 반바지 근무를 하고 있는 서구청 직원들.
▲ 대구의 구청들이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내놓아 전국 지자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 위로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중구청 직원들, 최근 담장을 허문 수성경찰서, 반바지 근무를 하고 있는 서구청 직원들.

대구 구청들이 이색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고유가 극복, 주차난 해소, 도시 미관 등 각종 현안을 해결하려는 독특한 시도들에 시민들은 물론 타 시·도와 중앙정부의 관심도 몰린다. 전국적인 벤치마킹 대상으로 확산된 정책도 여럿이다.

하지만 정작 바로 옆에 있는 대구시내 다른 구청으로는 번지지 않고 있다. 각 구청이 갖고 있는 지역적 특성과 환경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따라하기 싫다는 자존심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우수 사례, 선진지 견학이라는 명목으로 때마다 꼬박꼬박 다른 시·도와 해외로 떠나는 공무원들의 행렬과는 맞지 않는 이중성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

지난 15일 시작한 대구 서구청 공무원들의 반바지·샌들 차림 근무는 며칠 사이에 전국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행정지원과 최진욱 담당은 "충남 등 타지역에서 문의전화가 오고, 행정안전부 복무팀에서도 관련 계획안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고 했다.

실내온도 높이기, 조명 끄기, 넥타이 안 매기 등 그간 관공서나 기관단체들이 실시한 에너지 절약책과는 차원이 다른 파격적인 시도인 만큼 당연스런 관심이다. 에너지 절약의 '초강수' '초절전 모드' '현장을 읽는 행정'이라며 찬성하는 쪽과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민원인들에게 거부감을 준다는 부정적 시각이 팽팽한 점도 또 다른 주목 원인이다.

새롭게 부임한 서구청장이 시선을 끌기 위해 희한한 일을 벌인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중구청은 고공행진하는 유가에 '자전거와 도보'라는 평범하지만 실천이 쉽지 않은 대책으로 맞서고 있다. 직원들의 자전거 출퇴근을 독려하는 한편 출장·업무용 자전거 50대를 구입해 직원들의 출장 때 업무용 차량 이용을 제한하고 자전거를 이용토록 했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아예 대봉동 자택에서 걸어서 출퇴근하고 있으며, 전용차량도 사용연한이 만료되는 내년 2월 이를 매각한 뒤 없애기로 했다. 또 "구청에서 집이 멀지 않은 직원들이 출·퇴근 때와 가까운 곳에 출장을 갈 때는 걷는 게 좋겠다"며 간부들과 직원들에게 운동화 50켤레를 사 주기도 했다.

아파트에 비해 주택가가 훨씬 더 많은 남구청은 골목길 주차와의 전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내 집 앞 주차공간을 독점하기 위해 내놓은 각종 '자리표시'들을 대대적으로 거둬들이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상습적인 불법 주정차 구간에는 공영주차장을 만든 뒤 단속 강도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한다. '표'때문에 민원은 아예 피해가려는 민선 지방자치시대에 좀체 보기 힘든 모습이다.

◆전국으로 번지는 시도들

구청 단위의 모험적이고 파격적인 시도는 다른 지자체로 확산될 때 타당성을 키우며 강력한 동반상승 효과를 보인다.

담장허물기사업이 대표적인 예. 서구청이 시작한 이 사업은 '녹색 대구'를 지향하는 대구의 대표적인 브랜드 사업이 됐다. 1996년 시작된 이래 지난해까지 관공서 111곳, 주택·아파트 151곳, 보육·복지·종교시설 68곳, 학교 29곳 등 모두 431곳 21.6㎞의 담장을 허물고 33만9천㎡의 가로공원을 조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담장허물기는 금세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서울·부산·인천·광주 등 지자체들의 벤치마킹 붐을 일으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시민들의 불안과 원산지표시제 정착을 위해 수성구청이 지난 4월부터 시행중인 한우전문음식점 인증제에도 타 시·군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음식점이 밀집한 수성구의 특징을 감안해 단속에만 열중했던 구청이 철저한 성분검사를 통해 '관리체제'로 전환하면서 박수를 받고 있다. 소비자는 관(官)에서 진짜 한우임을 인증해주는 만큼 믿고 먹을 수 있고, 업소들은 신뢰를 얻으며 매출이 10~20% 상승하는 등 효과를 누리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 충청, 경북 등 10여개 지자체에서 세부 내용을 물어왔으며, 경북도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최근 도내 식육판매업소를 대상으로 한우판매점 인증제도를 시행키로 했다.

달서구청의 마을공영주차장도 갈수록 심각해지는 주택가 주차난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심각한 주차난에도 불구하고 빈터가 없어 주차장 건설이 힘들어지자 아예 노후 주택을 사들여 주차 공간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

달서구청은 2005년부터 시작해 도원동, 본동 등 이미 7곳을 조성한 데 이어 올해 안으로 추가로 2곳에 주차공간을 만들기 위해 협의를 하고 있다. 이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지자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옆 동네는 왜 무관심하나

대구 구청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전국적인 관심이 몰린다고 하지만 정작 대구의 다른 구청으로는 잘 전파되지 않는 '독특한' 현상을 보인다. 독자적 사업에 그치다 보니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사업 확산에 따른 홍보, 비용 절감 등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일부 사업은 구청 단위에서 지속하기 어려워 중단되거나 다른 시·도에서 더 확산돼 '원산지'가 대구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지자체들은 "다양한 사업들이 제안되고 실제 구정에 도입되지만, 효과 검증이 어렵다 보니 벤치마킹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별 차이가 엄연한데 무조건 벤치마킹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좁은 도심의 혼잡한 교통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중구청의 시도를 구역이 넓은 동구나 달성군 등에서 따라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얘기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이웃'집의 모범사례를 따라해 '남 좋은 일'을 만들어주기보다는 아예 색다른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생색내기에 낫다는 것. 타 시·도나 해외의 우수한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느냐는 전시행정 의도도 엿보인다.

한 구청 관계자는 "민선 이후 지자체 간 경쟁 의식이 강해지면서 좋은 사업이라고 해도 다른 구청에서 한다고 하면 높이 평가하지 않으려는 시기심이 생겨났다"며 "벤치마킹을 잘 하면 성과는 좋겠지만 민선 단체장들이 업적을 홍보하는 데는 써먹을 수 없다 보니 관심 자체를 못 갖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