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남자는 모르는 여자의 말(言)

뭔가 할 말 있는 듯 망설이는 아내에게 "왜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아니"라고 답한다. 여자가 하는 대표적인 거짓말 중 하나이다. 분명 뭔가 말할 듯 보이는데 아니라고 하는 것 말이다.

사실 이때의 "아니다"는 "잠깐, 생각 좀 정리하고"의 다른 표현이며, 뜸들이는 건 "그만큼 중요하니까 더 경청해서 들어줘"의 간절한 요구다.

이때 입은 "아니"라고 하지만 뇌는 바빠 죽는다. '뭐부터 얘기하지? 어떻게 말해야 더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똑같은 질문을 세 번쯤 받고 나서야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런 복잡미묘한 아내의 심리를 모르는 남편이 '아니면 (말하지) 말고'라고 말했다. '할 말 없으니 마라' 했을 뿐인데 갑작스레 짜증내는 아내가 도무지 이해 안 될 것이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생일이었다. "뭘 선물해 줄까?" 계속 물었으나 그때마다 "당신이 알아서"라고 답했다. 드디어 생일날 남자는 야심작을 건넸고, 여자는 선물을 뜯자마자 화를 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라면서.

갖고 싶은 것을 말만 했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남자는 여자의 애매한 표현에 참 갑갑하고 여자도 자기의 속뜻을 몰라주는 남자의 무심함에 속상하다.

여자는 남자를 '말 안 해도 속을 다 꿰뚫어보는 마법사'쯤으로 과대평가하지만, 남자는 꼭 찍어서 말 안 하면 정말로 모른다. 정말 모르는 것을 알라는 요구도 무지 황당하거늘 게다가 알면서 고의로 무시한다고 또 화를 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다 '애정 부족 탓'으로 결론을 내린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남녀의 다름이 정말 놀랍다. 이렇게 다른 생명체가 한 집에서 조율을 하며 살아간다는 게 기적에 가까울 뿐이다.

다들 우리 집 남자와 여자만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못 살겠고 사는 게 재미없단다. 아는 것이 힘이듯이 서로 다른 남녀심리를 알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하나 둘 수용되면서 새록새록 애정도 생긴다.

지난 과거는 지지고 볶았더라도 지금부터 잘 살아보자 한다면 오늘 당장 남녀심리 책 한권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정조시대 문인 유한준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를 되뇌면서….

김은지 경산시청소년지원센터·문화의 집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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