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21일, 대법원의 세칭 '딸들의 승리' 판결은 우리나라 양성평등 역사를 한층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당시 용인 이씨 사맹공파, 청송 심씨 혜령공파의 출가 여성 8명이 종친회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기존 관련 판례를 47년 만에 깨뜨리고 여성에게도 종회원 자격을 인정했다. 儒林(유림) 등의 거부감이 드셌지만 이날부터 모든 성년 여성은 종중원 자격을 얻게 됐다. 이로써 종중 재산 분배 과정에서의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발판도 마련됐다.
그러나 이 같은 전향적 판결은 곧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2006년, 우봉 김씨 계동공파 여성 27명은 토지수용 보상금을 놓고 종친회가 결혼한 딸들에게 남성 가구주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을 분배하기로 결정하자 남녀 똑같이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이에 재판부는 "가구주인 남성 종중원에게 여성 종중원보다 재산을 많이 나눠준 것을 남녀 차별로 단정할 수 없다"며 남성 종중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앞서 '여성에게도 남성 종중원과 같은 종중원 자격을 인정하라'는 대법원 판결과 상반됐다.
이런 가운데 종중 재산 분배를 둘러싼 또 다른 '딸들의 반란'에 재판부가 다시금 딸들의 손을 들어주는 사건이 생겼다. 최근 성주 이씨 총제공파 존자후손 용인종친회가 토지보상금을 남성 100%, 여성 40%, 며느리와 취학 미성년자 각 18%, 미취학 미성년자 11% 비율로 분배 결정을 하자 여성 종중원 81명이 "불공정하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자 법원은 20일 "여성 종중원에게 남성의 절반 이하로 분배한 종중의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종중 실정상 남성이 더 많은 재산을 분배받을 수 있다 해도 남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게 분배하는 것은 현저하게 불공평하다"고 했다. 며느리'미성년 자녀에 대한 분배가 실상 남성 종중원에 대한 재산분배인 점을 볼 때 불공평의 정도가 더 심해진다고도 지적했다.
공은 다시 여성 쪽에 넘어갔다. '딸들의 승리' 판결 이후 종중재산의 구체적 남녀 분배 비율에 대한 대법원의 후속 판례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의 결정이라 본안 소송과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종중재산과 빛바래진 '출가외인' 관념을 둘러싼 불협화음은 앞으로도 상당수 빚어질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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