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조선시대부터 울릉도 어민들의 생활공간이었다."
일본의 '무주지선점론'(無主地先占論)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남대 박성용(52·사진·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최근 10여년 동안 독도와 울릉도를 누빈 뒤 펴낸 '독도·울릉도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사회조직연구'(경인문화사)를 통해 1882년 고종이 울릉도 이주를 장려한 '울릉도 개척령'을 내린 이후 최소 120년 이상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를 실제 생활공간으로 인식하고 점유해 왔음을 증명했다.
박 교수는 이 책에서 "독도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섬, 단순히 흙과 돌로 이뤄진 섬이 아니라 울릉도 주민과 한국 어민 고유의 인지방식과 표상, 정감, 문화적 실천이 이뤄졌던 공간이다. 지금까지 일본이 주장해온 무주지선점론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지난 1977년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답사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기억사와 구술사를 직접 수집하며 '민족지'(민족의 특징적 생활양식 전반을 조사해 기술한 것) 방식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울릉도와 독도를 모자(母子) 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한국인의 공간인식 방식과 사회조직, 독도 관련 방위관념, 바람에 대한 지칭어휘의 유사성, 어업관습 등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는 뗄 수 없는 한 생활공간이라는 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지난 1966년 일본의 독도연구자 가와가미 겐조(川上健三)씨가 펴낸 '죽도의 역사지리학적 연구'에서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려면 130m 이상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울릉도는 예전에 밀림이었기 때문에 독도를 볼 수도 없었고, 당연히 인지조차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박 교수는 "울릉도 각지를 답사해보니 해발 87.8m인 행남지역에서도 독도를 관측할 수 있었다"며 "또 사동 새각단(200m)·석포(280m)·백운동(480m) 같은 마을은 이미 해발 200m를 넘어서는 곳이기 때문에 가와가미의 주장은 허구임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울릉도 주민들이 조선시대부터 독도에 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는 점도 밝혀냈다. 60세 이상 울릉도 주민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울릉도 동쪽 행남마을에서 조류가 정상이고 바람이 독도 쪽으로 불 때, 패철(옛 나침반)을 동쪽으로 향하게 한 뒤 103도 방향으로 가면 독도에 도착한다'는 것이 대대로 전승해오고 있었다는 것.
독도 주변에 부는 바람의 명칭이 울릉도 주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전해 내려온 것도 눈에 띈다. 박 교수는 "독도 동쪽에서 부는 바람은 '동새', 북풍은 '북새', 서풍은 '댕갈', 남풍은 '정갈바람' 등으로 명칭이 세분돼 있고, 바람에 따른 독도 부근 바다의 조업 조건까지 전승되고 있는 등은 독도가 어업을 주로 하는 울릉도 주민의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준다"며 "이는 한반도 동남 해안지역에서 사용하는 바람 명칭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처럼 독도는 무인도가 아니라 한국 어민의 삶과 문화가 긴 세월 동안 형성되고 축적된 한국인의 생활공간"이라며 "역사적 접근에 더해 생활공간으로서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이번 연구야말로 한국의 영유권 확립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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