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병실꽃밭

병실은 환자들만 있는 곳이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꽃밭이 될 수도 있다. 만발한 꽃들 사이로 사랑의 꿀을 분주히 나르는 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며 꽃잎에 입맞춤하는 나비들도 있다. 꽃들을 돌봐주는 정원사들도 있고, 떨어진 꽃잎을 담아가는 청소원들도 있다. 꽃들이 시들기라도 하면 달려와 이리저리 살펴서 치료해 주는 치료사들도 있다.

내가 근무하는 신경외과 병실에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놓고 오랫동안 누워있는 꽃들이 많다. 욕망과 질시, 물욕(物慾)과 명예욕을 깨끗이 지워버린 맑은 눈동자를 꽃술처럼 꽃부리로 감싸고, 배설물의 치욕을 꽃받침으로 감추는 식물인간들이 많은 것이다. 이들한테는 사랑의 꿀을 날라주는 벌들이 있다. 하루종일 힘든 일을 끝낸 일벌처럼 날갯짓이 힘들어 보이지만 그래도 새벽 이슬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그들의 입에서는 향내가 난다.

병원 생활 3개월이면 친구가 사라지고, 6개월이 지나면 형제간에 균열이 생기며, 1년이 지나면 효자와 불효자가 구별되고, 3년이 지나면 모든 자식은 불효자가 된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향내를 담은 주머니를 달고 붕붕거리며 꽃들을 찾아다니는 벌들을 본다. 어떤 경우는 꽃의 아내이고, 어떤 경우는 어머니이며, 어떤 경우는 여동생이고, 그리고 어떤 경우는 자식들이다. 가끔 그들의 소원을 듣는 경우가 있다.

"선생님, 대소변만 가리게 해 주십시오. 몸에서 버린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이제 겨우 알았어요. 버리는 것이 그렇게 힘든데 왜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썼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보호자가 울면서 이야기한다.

"선생님, 어머니가 깨어나서 한번만이라도 제 얼굴을 알아보고 웃어주도록 해 줄 수는 없을까요? 제가 3년 넘게 이렇게 어머니를 돌보는 것도 한번 더 저를 알아보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소리없이 코 옆으로 눈물을 흘러내리며 어느 보호자가 한 이야기다.

간호사가 나비처럼 다가와 환자의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잰다. 간병인이 기저귀를 갈아 주고 몸을 닦아 준다. 청소하는 아줌마가 벗겨낸 기저귀를 바구니에 담아 간다. 의사가 다가와 욕창을 치료해 준다. 병실은 꽃들과 벌들과 나비와 정원사들과 청소원들과 치료사로 붐빈다. 병실은 꽃밭이 될 수 있다. 식물 같은 인간이 화려한 꽃을 피우고 사랑의 꿀이 젖줄처럼 흐르는, 천국으로 승천하는 길목이 될 수 있다. 나는 그곳에서 근무하는 행운을 얻고 있다. 매일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고 꿀의 단맛을 즐기는 그런 축복을 받으면서 말이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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