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기섭의 목요시조산책] 덩굴손/염창권

어린 딸의 하루하루를 맡겨두는 이웃집

구석진 벽으로 가서 덩굴손을 묻고 울던 걸

못 본 척 돌아선 출근길

종일 가슴 아프더니

담벽을 타고 넘어온 포도 넝쿨 하나

잎을 들추니 까맣게 타들어간 덩굴손

해종일 바지랑대를 찾는

안타까운 몸짓

저물어서야 너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촉촉한 네 눈자위를 꼬옥 부여잡고 걸으면

"아침에 울어서 미안해요"

아빠를 위로하는구나

맞벌이 부부인가 봐요. 어린 딸을 이웃집에 맡겨놓고 못 본 척 돌아서는 출근길. 벽 쪽으로 가 덩굴손을 묻고 우는 모습이 종일 눈에 밟힙니다. 살붙이를 떼어놓는 일은 이렇듯 매일매일 거듭해도 매일매일 안쓰럽습니다.

그 안쓰러움이 담벽을 타넘어온 실제의 포도 넝쿨과 겹칩니다. 커다란 잎 아래 옹그린 어린 덩굴손. 누군가 그늘을 받쳐줄 바지랑대를 찾지만 여의칠 않습니다. 덩굴손의 안타까운 몸짓에서 어린 딸의 모습을 보는 부정이 사뭇 짠한데요.

저물어서야 찾아오는 딸. 이제 아빠와 딸이 함께 집으로 갑니다. 두 손은 물론이고 촉촉한 눈자위까지 꼬옥 부여잡은 채. 아침에 울어서 미안하다는 딸의 한마디가 가슴에 맺힙니다. 덩굴손은 그렇게 날마다 조금씩 자라 어느 날인가 세상의 담장을 훌쩍 타넘을 것입니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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