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에 시작된 소련 집단농장화의 목적은 농민 공동체의 파괴를 통한 임금 농업노동자군의 형성이었다. 이에 저항하는 농민은 가차없는 보복을 받았다. 스탈린은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농민에게 식량 유입과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 봉쇄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1933년 한 해에만 420만 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농업집단화 과정에서 당시 전체 인구의 절반인 170만 명이 사망했다. 이를 포함, 농업집단화 과정에서 죽은 농민의 수는 소련 전역에서 700만 명에 달한다.
1958년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시작된 대약진운동은 더 엄청난 사망자를 낳았다. 중국 홍기(紅旗) 출판사가 1994년 2월에 출판한 '중화인민공화국 역사 기록'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1959년에서 1961년에 비정상적인 사망과 출생 인구의 감소는 대략 4천만 명 정도이다. …중국인구가 4천만 명이나 감소되었으며 이는 금세기 최대의 기근일 것이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기근을 피해 탈출하는 주민들을 봉쇄, 그 지역에서 굶어죽게 했으며 식량을 훔친 주민은 총살했다.
서구의 식민지 개척은 원주민에 대한 조직적인 대량학살과 추방이 뒤따랐다. 1511년 중남미의 한 인디언 추장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화형을 당했다. 처형 직전 스페인 식민자들은 자비를 베푼답시고 그에게 기독교인이 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며 개종을 권했다. 이에 추장은 백인들이 벌써 천국에 가 있느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이 있자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되지 않겠다. 그처럼 잔인한 인간들이 있는 곳에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으니까"라며 거절했다.
보스니아 내전의 '인종청소'의 주범 라도반 카라지치가 지난 18일 체포됐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 의해 기소된 지 10년 만이다. 그는 보스니아 내전이 불을 뿜고 있던 1992~1995년 사이 25만 명의 이슬람계 주민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면 스탈린, 마오쩌둥, 스페인 식민자와 카라지치의 차이점은?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전자는 승자고 후자는 패자다. 너무 냉소적인가? 그의 체포는 세르비아의 유럽연합(EU) 가입 전제조건이었다. 그래서 그의 체포가 정의의 추구라기보다는 국가의 현실적 이해타산의 결과인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정경훈 정치부장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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