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좀 바뀌나?'
대구시가 최근 도심 승용차 진입 억제, 공공기관 주차장 유료화 등 승용차 운행 감축 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김범일 시장이 22일 한일극장 앞 횡단보도 설치를 공언하고 나서면서 대구시의 교통정책이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뀌느냐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 자동차 중심의 정책 틀을 바꾸는 일 자체가 워낙 힘든데다 바꾸려는 대구시의 의지도, 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본다.
◆자동차만 있고 사람은 없다
대구는 전국 최고 수준의 도로율을 자랑한다. 1990년 14.56%이던 도로율을 2007년 22.08%까지 끌어올렸다. 자동차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그만큼 잘 닦았다는 얘기다.
통행속도를 보면 자동차를 위한 투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대구시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2002년 78만6천570대에서 2007년 88만1천481대로 5년 사이에 10만대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자동차 통행속도는 거의 변화가 없다. 러시아워의 도심지 통행속도는 2002년 시속 23.7km에서 2007년 22.4km로 1.3km 줄었다. 자동차 대수가 12% 늘었는데 속도는 겨우 5.5% 줄어들 정도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외곽지는 이보다 더해 시속 30.5km에서 29.6km로 겨우 0.9km 줄었을 뿐이다.
반면 교통정책 수립 때 가장 먼저 배려해야 할 교통약자에 대한 투자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2007년 기준 대구의 교통약자는 56만4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22.9%를 차지한다. 영·유아와 어린이, 임산부와 고령자, 장애인을 모두 포함한 숫자다. 그런데 교통약자들이 필요한 편의시설(저상버스, 휠체어 승강설비, 터미널 내 수직수평이동시설 등)은 기준에 적합한 비율이 59.6%에 불과하고 10.9%는 미적합, 29.4%는 아예 설치가 돼 있지 않다. 전국 평균이 적합 63.7%, 미적합 9.4%, 미설치 26.9%인 것과 비교하면 대구는 취약지에 속한다.
그런데도 올 들어서야 교통약자를 위한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짜기 시작했다. 휠체어 탑승설비 등을 장착한 특별 교통수단은 인구 100만명 이상 도시에 적어도 80대가 필요한데 대구는 올해 30대를 구입할 예정이고, 2011년에야 80대를 맞춘다는 계획이다. 지하철 1호선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는 것은 2012년 이후에 가능하다.
◆정책만 있고 의지는 없다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가 이 정도 수준인데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에 대한 배려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안재홍 사무국장은 "대구 교통정책의 핵심 기조가 사람 중심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보행자를 보호하고 자전거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주며 버스와 지하철 이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우선순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승용차 운전자나 도로변 상인들의 반발을 우려해 자동차 단속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도 많다.
대구시내버스조합 관계자는 "버스 운행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불법 주·정차 단속이 절실한데 시와 구청의 의지가 약해 1, 2차로에서 버스 승객을 내려주는 일이 허다하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최근 대구시가 내놓고 있는 정책에 대해서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주요 가로를 승용차 관리지역으로 설정해 자전거도로를 우선 건설하겠다거나 불법 주·정차와 버스전용차로 위반을 집중 단속하겠다는 방침이 실제로 얼마나 추진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사람 중심 도시가 되려면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대구시가 앞장서 '대구는 이제 사람 중심 도시'라고 선언하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단순히 교통 문제 개선을 위한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할 게 아니라 정책의 기본 틀을 바꾸고 의식과 행동을 바꿔나가자는 것이다.
그들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늘 민원이 우려된다고 핑계를 대는데, 반발하는 사람보다 말없이 지지하는 시민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공무원들은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 시장의 '달구벌대로의 자전거도로 설치 불가론'을 들었다. 김 시장은 22일 시민·사회단체 실무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 채 부작용을 무릅쓰고 추진하는 건 책임 있는 행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시민단체 대표는 "자동차 접근을 불편하게 만들면 도로변 상인과 주민들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 자체가 자동차 중심 사고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대구시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정책 가운데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부분도 적지 않다. 교통약자를 위해 준비중인 보행우선구역은 기대를 가져도 좋을 듯하다.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와 함께 동대구 역세권, 수성못길, 영대병원 정문 구간 등을 보행우선구역으로 지정해 차량속도저감시설, 횡단시설, 보행자 우선통행을 위한 교통신호기 등을 설치한다는 것들이다. 서구노인복지회관과 남구 경북노인대학 등에 실시할 노인보호구역 정비사업도 보행자 위주라는 데서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영남대 윤대식(도시공학과) 교수는 "교통수단의 선택 기준이 되는 비용과 시간에 대한 원칙을 사람 중심으로 결정하고 단속과 장려를 병행하는 방법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