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곰치가 9년 만에 장편소설을 냈다. 그동안 왜 소설을 쓰지 않았느냐, 무엇하며 지냈느냐고 물었더니 "열심히 글을 썼다. 정통문학 장르는 아니고 생명과 생태 현장을 찾아다니며 녹색평론과 프레시안 등에 르포와 인터뷰 기사를 썼다"고 했다. 정통문학에서 벗어나 있었고 다른 많은 일을 했지만 말과 글을 포기하거나 잊은 적은 없다고 했다.
김곰치는 10년 가까운 거리두기에 대해 "기존 정통문학을 회의했다. 장르의 틀이 사람을 가두는 것 같았다. 그 틀을 회의했기에 그 틀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출간한 장편소설 '빛'은 논란의 소지가 많아 보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한 정면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종교가 없지만 무신론자는 아니며, 유물론자이고 싶지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공명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꼭 기독교의 하나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시인 백무산은 '김곰치가 이번에 출간한 '빛'은 인간이 죄를 짓도록 기다렸다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도록 하겠다는 의도에 대한 고발이다. 이 소설은 예수 프락치 사건을 다루었다고 할 만하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 역시 '종교는 구원의 주체여야 할 인간에게 거지근성을 강요한다. 구원을 구걸하느니 죄의 길을 가겠다'고 말한다.
소설 '빛'은 남자와 여자, 종교를 축으로 전개된다. 호감으로 시작된 남녀관계가 종교라는 장애에 부딪혀 비호감으로 바뀌었다는 비교적 간단한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책을 덮어도 이야기 혹은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작가가 15년 동안 가져온 의문들이 소설 속에서 살아 날뛰기 때문이다.
일상과 종교는 성/속, 주일/평일, 교회/집이라는 경계를 준수함으로써 양자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김곰치의 소설 속 남녀는 이 같은 분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종교는 사랑을, 사랑은 종교를 자객처럼 숨기고 있다. 젊은 두 남녀는 충분히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못한다. 이 천년 묵은 종교의 하중을 견디지 못한 연애는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하고 금이 간다. 종교, 나, 그녀의 삼각구도에서 나와 그녀를 갈라놓는 것이 종교이며, 더불어 나와 종교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는 그녀다.
주인공 나는 그녀와 나란히 걸으며 '이런 여자를 내 옆에서 걷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말 값을 이렇게 높게 쳐주는 여성은 처음입니다. 나의 하느님!'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호감상황은 비호감상황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역할한다. 비호감상황에 들어서면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다가 실패하고, 여자는 팔짱을 끼다가 거절당한다. 여자는 10분 늦게 오는 것으로 '시발년'이라는 욕을 덮어쓰고, 남자는 오래 걷게 하거나 팝콘을 오래 들고 있게 해 여자를 화나게 한다.
나의 연인 정연경은 예수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교만으로 규정하고, 나는 모든 것을 예수로만 통해야 한다는 기독교도들을 증오한다. 정연경에게 하느님과 기독교 교리,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동일계열체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 차이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다. 그녀가 하나님의 예언으로 읽는 구약을 나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로 읽고, 나는 성경을 재미있게 읽는데 그녀는 성경을 공부한다. 뭐 하나 제대로 될 리 없다. 공감의 기쁨이 넘치거나 흥에 겨워 팔짱을 낄 때, 심지어 마주앉아 문어를 먹을 때조차 종교는 그들의 배후이기를 포기하는 법이 없다.
김곰치는 작정하고 이 소설을 썼다. 기독교인들이 반발하겠다는 말에 "종교인들이 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수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열심히 살고 죽었다고 본다. 열심히 살고 죽은 사람에게 애정과 존경을 표시한다. 이런 관점을 반기독교라고 몰아간다면 곤란하다. 나는 작가로서 내가 할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나머지는 한국 기독교, 기독교 신자, 평론가들의 몫일 것이다. 열린 목회자들도 많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광신도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편향된 신자들이 오히려 기독교를 왜곡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소설 속 정연경과 나는 실제로 작가의 연인과 나의 분신이기도 하다. 김곰치는 "물론 소설에는 왜곡과 과장이 있다. 그러나 대충의 이야기는 내가 실제로 겪었던 상황과 거의 같다"고 했다. 그는 결혼을 생각하며 한 여자와 만났지만 종교문제로 헤어졌다고 했다. 작가는 아직 총각이다.
김곰치는 "내 연애가 실패하면서 분노했다. 내 연애의 실패는 그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부분 기독교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 소설이 단순히 실패한 연애에 대한 분노의 표출은 아니다. 내게 기독교는 15년 동안 붙들어온 담론이다"고 했다. 그는 군복무 시절 '예수의 삶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4대 복음을 밑줄 그어가며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의문부호를 꼼꼼히 남겼다고 했다. 작가는 기독교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한 소설을 쓰고, 여러 차례 퇴고작업을 하는 동안 자신의 마음도 많이 정리가 됐다고 했다.
작가는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하느님 역시 최선을 다하는 존재다. 사람의 능력으로 병들어가고 오염되어 가는 하느님을 도울 때다. 하느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라고 할 때다"며 사람들이 종교를 비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 사람들이 참 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곰치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서울에서 등단했다. 서울로 진학한 많은 지방출신들이 서울에 남지만 그는 졸업 후 여섯달 만에 부산으로 돌아갔다. 부산의 '시 21' 동인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한 장편소설 '빛'도 부산의 '산지니' 출판사에서 냈다. 작가라면 서울의 큰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출판을 의뢰하는 서울의 출판사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문학은 자기 진실이다. 어디에서 활동하느냐, 어느 출판사에서 책을 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서울이 왠지 내게 맞지도 않았다. 몸이 안 좋아 부산으로 돌아왔는데 부모님과 살면서 건강을 되찾으니 좋다."
그는 "문학의 길은 내가 만들어 가는 길이다. 나는 지방에서 세계를 못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학은 작가 스스로 완성하는 것이며, 서울이 문학을 완성해 주지는 않는다는 말이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김곰치는…
1970년 경남 김해 출생. 본명 김경태.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1년 단편소설 '토큰 한 개의 세상'으로 서울대 대학신문 대학문학상 당선. 1995년 단편소설 '푸른 제설차의 꿈'으로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르포·산문집 '발바닥, 내 발바닥'. 장편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로 제4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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