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2002)
감독:홍상수
출연:김상경, 추상미, 예지원
러닝타임:115분
줄거리:허접한 3류 배우 경수(김상경). 잘 아는 감독만 믿고 영화에 출연했는데 흥행이 시원치 않다. 런닝개런티를 부득부득 우겨 받아내 글을 쓰는 선배를 찾아 춘천으로 내려간다. 자신의 팬이라는 여자 명숙(예지원)을 만난다. 무용가인 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근사하다. 술을 마시다 모텔로 향하는 둘. 사실 그녀는 선배가 좋아하는 여자다. 충동적으로 경주행 기차에 오른 경수는 옆 자리의 선영(추상미)에게 끌려 무작정 그녀를 쫓아 나선다. 차가운 듯 끌어당기는 그녀의 집을 배회한다.
왜 수놈이란 뜻의 '수'만 붙으면 보통소리가 거세질까.
수탉, 수캉아지, 수캐, 수평아리, 수퇘지…. '암'도 마찬가지다. 암탉, 암캉아지, 암캐, 암퇘지가 된다.
음운법칙은 차치하고, 마치 정액 덩어리를 쏟아내고, 받기 위해 빨판으로 휘감아 밀착된 암수의 거세고 화급한 정욕(情慾)의 본체를 보는 듯하지 않은가.
'수컷의 본능이 고작 아랫도리 해소 본능이냐'는 비난 속에서도 홍상수표 영화가 의연하게 이어오는 것이 바로 이 정욕이다.
오가는 술잔에 무장해제된 의식들, 그러나 오히려 이 행위를 위해 태어난 듯 살아서 꿈틀대는 욕망, 그리고 나란히 이어지는 여관행(行). 감독은 소위 지식층이라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이러한 섹스 의식(儀式)으로 들춰내고 있다.
'생활의 발견'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연극배우 경수는 친한 감독의 권유로 영화에 출연했다가 영화가 망하는 바람에 바람도 쐴 겸 지방투어(?)에 나선다. 술이 있고, 여자가 있고, 그리고 널려 있는 숙박업소가 있다. 거기에 패배감에 대한 반발심으로 일탈의 기운도 충만돼 있다.
'그의 본색(色)과 그녀들의 본심(心)이 함께하는 6박 7일 트루(?) 로맨스'라는 광고카피처럼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생활의 욕망을 잘 그려내고 있다.
화가 박철호는 자유로운 드로잉 같은 배경에 여자와 섹스의 이미지, 그 사이에 뱀을 그려 넣었다.
공주를 짝사랑한 총각이 상사병에 걸리자 왕이 죽여 버린다. 뱀으로 환생한 총각은 공주의 몸을 칭칭 동여맨다. 공주는 밥을 얻어온다며 청평사 회전문 앞에서 뱀을 내려놓고 들어가버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공주가 나오지 않자 뱀이 회전문을 넘으려고 한다. 그때 천둥번개가 치고 뱀은 돌아간다.
여관 앞에서 여자를 따라 들어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지만 경수는 늘 들어가는 쪽을 선택한다. 경주에서 만난 선영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영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회전문 앞에 서성이는 한 마리 뱀이 된다.
시인 박미영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회전문'에서 꽉 끼인 셔츠와 같은 욕망덩어리를 안고 왕릉에 누워, 또는 골목길에서 비를 맞고 선 경수를 그리고 있다.
끝없이 치닫는 욕망. 그 이름은 전차가 되기도 하고, 폭주기관차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생활의 발견'에선 회전문이다. 환생과 윤회, 모방과 데자뷰의 이름. 그래서 죽여도 결국은 살아서 돌아오는 뱀이다.
욕망의 끝은 또 다른 욕망의 시작이다.
샐비어가 시들어도 밑둥의 꽃물은 쉬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욕망은 원 웨이 티켓이 아니라 거울 가득한 방에 나와 블록 담벼락에 오줌을 갈기며 씩 한번 웃었다가 다시 침대에 돌아오는 왕복행이다.
회전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끊어지지 않고, 우리의 발목에 채인 족쇄와 같은 것이다.
그러면 욕망은 사악한 것일까.
한 줄 겨우 아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글로 파먹고 사는 글쟁이, 앎과 모름의 경계에 서 있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체하는 '지식의 주변인' 교수, 밖의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면서 관객만 타박하는 연극쟁이…. 그들의 허위가 더 사악한 것 아닌가.
차라리 그대 욕망의 자유이용권을 팔목에 차라.
'그것이 생활이다. 성이다. 세속이며 속세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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