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부의 최빈국 짐바브웨는 정치 부패와 무능한 경제정책 여파로 참혹한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물가가 220만%까지 치솟자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1천억 짐바브웨달러(Z$)짜리 지폐를 발행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1천억 짐바브웨달러 한 장으로도 빵 두 덩이, 계란 3개밖에 못 산다고 하는군요.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는 1차대전 이후 10년 동안 독일에서 일어났습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는 세금과 채권으로 충분한 세입을 확보하지 못하자 제국은행을 통해 새 돈을 찍어내는 방법으로 결손을 메우기 시작합니다. 살인적인 인플레의 서곡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제 저술가 맥스 샤피로의 저서 '인플레로 돈버는 사람들'(한울 펴냄)로 묘사한 당시 독일의 초인플레 현상은 광란 그 자체였습니다.
1913년 이후 10년간 독일의 물가는 1조4천230억 배 상승합니다. 1923년 11월 독일의 총 통화량은 400,338,326,000,000,000,000(4해33경8천326조)마르크까지 팽창합니다. 식당에서는 식사를 시작할 때 1천억마르크였던 음식값은 식사 끝날 무렵 1천150억마르크가 되고, 계산서를 받을 때쯤엔 1천250억마르크로 둔갑합니다. 인플레가 극에 달한 1923년 말 독일에서 버터 1파운드는 3조마르크, 쇠고기 1파운드는 2조5천억마르크, 신발 한 켤레는 32조마르크였습니다. 제국은행은 1923년 11월 급기야 100조마르크 짜리라는 어마어마한 고액권 지폐를 찍어내는 지경에 이릅니다.
도대체 인플레는 왜 일어나는 걸까요. 샤피로는 "물가 상승으로 인해 큰 이득을 보는 사람들에 의해 인플레가 조장된다"는 이색적인 주장을 폅니다. 인플레가 일어나는 동안 서민과 대중의 부는 일부 특권층에게 급격히 이동한다는 것이지요. 작가 펄벅이 초인플레 기간을 살아온 독일인과의 대화를 모은 작품 '그것은 어떻게 일어나는가'(How It Happens)에도 비슷한 증언이 나옵니다. "독일인 모두가 인플레로 고통받고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제와서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람이 지는 경기는 없는 것이다. 인플레 기간의 승자는 대기업가 혹은 당원이다. 패자는 노동계급, 그리고 가장 많이 잃은 중류층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인플레 때문에 서민들의 삶이 고단합니다. 최근의 인플레는 미국 달러화 가치 하락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자국의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달러를 마구 찍어내다 보니, 달러화로 결제되는 원유·곡물 등 상품시장에서 투기세력 준동의 빌미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민이 받을 고통을 세계가 분담한다는 지적도 있지요.
세계경제 비상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보여준 상황 인식을 보면 불안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데도 고환율을 용인한 것은 대표적인 역주행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경제가 총성 없는 전쟁이며 패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우리는 이미 11년 전에 경험했습니다. 이번주 주말판에는 미국의 달러 패권주의를 다뤄보았습니다. 큰 싸움이 벌어졌을 때는 눈치가 빨라야 다치지 않습니다.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바랍니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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