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안성기 장미희 주연의 영화 '깊고 푸른 밤'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부와 기회를 꿈꾸는 야망의 사나이가 영주권을 얻기 위해 위장 결혼하는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이민국 직원들이 들이닥치자 궁지에 몰린 남자는 미국 국가를 노래한다.
'오! 자유의 땅, 용감한 백성의 땅 위에 성조기는 지금도 휘날리고 있다~'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그는 간절함을 호소력을 통한 노래에 실었고, 그의 투혼(?)에 결국 이민국 직원들이 두 손을 든다.
이 장면은 제라르 드빠르디유와 앤디 맥도웰의 '그린 카드'(1990)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정도로 많은 영화에 등장했다.
노래는 만국공통어이다. 노래는 그 어떤 언어보다 힘을 가지고 있다. 원수지간의 반목도 노래로 풀 수 있다.
지난해 '밴드 비지트'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역사적인 앙금이 많은 두 나라다. 이집트의 한 경찰악단이 이스라엘 공항에 도착한다. 이번 공연은 해체위기에 빠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러나 영어 발음을 잘못 알아듣는 바람에 엉뚱한 마을에 도착한다.
완고한 역사적 반목의 현장에서 그들은 다행히 세 대 팀으로 나눠 마을 주민들의 집에 묵게 된다.
사사건건 막히는 두 종족은 하나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다. 바로 노래다. 영화에서는 보니 엠의 '써니', 마일즈 데이비스의 '서머 타임', 쳇 베이커의 '마이 퍼니 발렌타인' 등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노래들을 함께 들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이 노래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의 에란 콜리린 감독의 작품이다. 이집트인을 주인공으로, 이집트 입장에서 찍은 영화지만 정작 이집트에서는 상영되지 못했다. 확실히 현실은 영화보다 못한 모양이다.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에서는 '대니 보이'가 나온다.
'대니 보이'는 아일랜드 민요다. 고향에서 쫓겨나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고향마을의 풍경. 나는 그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향의 잔디로 돌아가고 싶다. 이 몸으로 못가면 꽃송이가 되든지. 나무사이에 떨어지는 사과가 되더라도 돌아가고 싶다.'
이 노래는 단순한 음률의 민요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인간 본성에 호소하기에 많은 아티스트들이 불렀고,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다.
미군에 포로로 잡힌 한국인 밴드. 그들 눈에야 생김새로 보면 베트콩이나 마찬가지. 밴드의 리더가 '대니 보이'를 부르기 시작한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미군. 고향을 떠나 죽음의 전쟁터에 온 그들 모두가 바로 '대니 보이'의 심정이 아닐까.
죽어서라도 가고 싶은 나의 고향, 그리고 가족, 사랑하는 이. '대니 보이'는 한 순간에 그들을 고향으로 치닫게 했을 것이다.
목숨까지 구한 노래의 힘이다.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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