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로 건너간 대구경북 상이군경 21명이 태극기를 두른 채 삭발하고 혈서를 쓰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독도는 한국땅"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머리를 깎고, 손가락을 잘라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 병약한 과거가 만든 상처를 치료하는 데는 수십 배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조어도처럼 실효지배조차 일본에 빼앗겼다면 우리의 독도는 더 이상 우리의 독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중국인들의 조어도에 대한 갈망은 우리의 독도열망 못지않지만 발조차 디딜 수 없는 현실이다. 2003년 10월 9일 12시 일단의 조어도수호대를 태운 중국의 조어도수호선이 조어도에서 20해리 떨어진 해역에 도착한다. 때를 맞추어 일본 해상보안청소속 군함 1척과 헬기 1대가 등장하고, 일본군함은 시종일관 중국선박을 따라다니면서 경고를 발한다. 중국선박이 조어도 방향으로 계속 항해하자 일본은 군함 1척과 헬기 4대를 더 증파한다. 중국선박이 조어도의 수목이 육안으로 식별될 정도의 거리인 100m 이내까지 접근하자 두 척의 일본 쾌속선이 중국선박을 공격한다. 헬기에서 고막이 터질 정도의 경고음이 발해지고, 합금선체의 일본함정이 중국의 강철선박에 충돌한다. 중국선박의 선체 군데군데가 우그러지고, 사방으로 기름이 튄다. 궁지에 몰린 중국인들이 식품창고에서 계란을 꺼내 일본 선박에 던지자 일본보안청대원들이 잠시 고개를 숙인다. 이 틈을 타 중국인들은 "일본인은 조어도에서 꺼져라!"고 외쳐보지만, 더 이상 조어도에 접근하지 못한다. 상륙은 물론이고 조어도 주변을 순회하는 것조차 일본경비정에 의해 저지당한다.
이 사건이 있은 지 몇 개월 후인 2003년 12월 28일 샤먼에서 세계화인조어도수호논단이 개최되고, 중국민간조어도수호연합회가 정식으로 성립된다. 논단에서 '중국민간조어도수호연합회'회장 통증은 조어도수호활동을 계속할 것이고, 가까운 시일 내에 조어도 사용권을 임차할 것임을 천명한다. 중국정부가 이미 무인도를 임차해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만큼 조어도도 임차하여 개발하고 경영할 계획이 있으며, 이미 자기 회사 명의로 관련부문에 신청서를 보냈고, 신청서를 국가가 비준해주기만 하면 일본과의 교섭이나 절차는 모두 민간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인다.
'조어도수호선언'도 채택된다. 조어도 관련조직은 1971년 뉴욕화인들에 의해 조어도수호운동이 시작되면서 생기기 시작했는데, 현재 세계적으로 약 200여개에 달하는 각종형식의 조어도수호 화인조직이 있다. 논단에는 북미, 남미, 홍콩, 대륙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국내외 화인 30여명이 참석했으며,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대륙대표인 쥐더위엔 교수는 그가 집필한 '조어열도주권변' 등의 글에서 조어도의 역사를 상세히 기술하고, 다수의 일본 사료들을 인용해서 조어도에 관한 일본의 논리를 반박하고 조어도주권선언의 유효성 근거를 제시한다. 뉴욕에서 참석한 조어도수호회 1세대인 63세의 천시엔중은 젊은이들의 참여가 많은 사실을 적시하고, 조어도수호는 일시적인 운동이 아니라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임을 강조한다.
이론적 기반과 체계를 정비한 중국인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2004년 1월 15일 오전, 두 척의 조어도수호선이 조어도에서 12해리 떨어진 해역에 접근한다. 1호선이 조어도 12해리에 진입했을 때, 일본함정은 고함을 치며 진입을 막기 시작한다. 조어도수호선이 계속 전진하여 조어도 가까이 접근할수록 일본의 저지행위는 더욱 강렬해진다. 수호선이 조어도 1만5천709~1만9천636m(4~5리) 되는 거리에 이르렀을 때 일본함정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강도가 2003년보다 더 높아진 탓에 1호선의 좌현은 충돌에 의해 금방 일그러진다. 조어도수호대는 일본함정을 향해 계란과 물병을 던지며 항의시위를 벌인다. 일본함정은 즉시 고압의 물대포로 공격하고, 갑판위의 모든 사람들을 물에 빠진 생쥐꼴로 만든다. 일본함정은 조어도수호선의 기관실을 주요 공격목표로 삼고 물대포를 분사한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기관실의 유리창이 깨어지고 기관사는 유리 파편에 맞아 널브러진다. 격렬한 충돌 중에 조어도수호대원 한 명이 허리부상을 당하고 공방은 정리된다. 조어도수호대는 중국주권을 상징하는 석비를 조어도해역에 던지고 철수한다.
몇 해 전 독도문제로 단지하는 한국인의 모습이 중국인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때 사실을 접한 중국인들의 깊은 반성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여전히 삭발을 하고 손가락을 자르고 있다. 엄청난 국세가 투입된 각종 연구소가 연생하고, 전문 담당부서가 생겼지만 나아진 게 없다. 그에 비해 중국은 늦게 출발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화인을 조직화하고, 조어도문제를 홍보하고, 직접 부딪치는 전사들을 선발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우리가 잠시, 영토문제의 본질은 힘이고 시간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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