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나온다. '곰'은 동굴 안에서 쑥, 마늘만 먹고 100일을 견뎌 위대한 웅녀가 되었고, '호랑이'는 그걸 못 참아 평생 미천한 금수로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 설화를 접하면서 '곰'은 인내력의 달인으로서 닮아야 할 모델이며, '호랑이'는 끈기와 인내력이 부족해 중도탈락한 패배자로 여겼다.
과연, 그럴까? 좀더 비틀어서 보자. '곰'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어디서? 동굴에서. 그리고 초식을 한다. 그런 '곰'이 동굴에서 초식으로 100일 견디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었을까? 어차피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면 100일쯤이야 후딱 간다. 그렇다면 '호랑이'는 어떤가? '호랑이'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육식동물이다. 처음부터 곰 친화적인, 곰을 위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대입해 보자. 크게 '곰과'와 '호랑이과'로 나뉜다. 규범형인 '곰과' 아이들은 동굴 속 학교시스템의 담백한 채식형 학습방식을 잘 견뎌낸다. 일명 모범생이다. '호랑이과' 아이들은 갇힌 듯 답답한 학교시스템을 못 참는다. 학교 밖 현장답사나 캠프를 통해 체험하고 몸으로 체감하는 맛있는 '육식형' 학습법을 원하니 말이다. 비록 동굴 안이라도 프로젝트식 수업, 역할극, 발표수업, 실험 등 버라이어티하고 역동적인 요리법의 수업을 원하는 것이다.
차이는 차이일 뿐, 나쁜 것은 아닌데도 다름이 나쁘다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다. '호랑이'를 우리 속에 가두어 계속 야채를 주면서 그들이 맛없다 하는 게 '호랑이'의 탓인가? '곰'으로 착각하고 사육한 사육사의 잘못인가?
대부분 이런 선호방식을 이해 못하고 왜 '곰' 방식에 따라오지 않느냐고 야단치고 문제아 취급한다. 규범형 학생, 교사 천국에서 이들이 설 자리가 없다. 계속적인 몰이해는 결국 대안학교를 선택하거나 반항하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오게 한다.
'조기유학' '기러기 아빠' 등 예전에 없던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단지 철철 넘치는 돈을 과시하기 위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전한 동굴 밖에서 입맛에 맞는 맛있는 공부를 시켜서 '호랑이'를 호랑이답게 밀림의 맹수이자 왕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희생을 감수한 힘겨운 뒷바라지가 아닐는지.
시대는 변한다. 문화와 세대의 변화 속도는 광속도인데 교육은 아직도 16비트의 속도다. 그 속도차이로 인해 방황하는 아이들, 과연 온전히 그들만의 문제일까.
김은지 경산시청소년지원센터·문화의 집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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