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손/송경동

버스 기다리는 척 벼룩시장이나 교차로를 슬쩍 뽑던 손

무담보 신용대출 854-2514 전봇대에 붙은 번호표를 뜯던 손

전철이나 버스 손잡이를 잡지 않던 손

악수하기를 꺼리던 손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끼어 있던 손

괭이가 박혀 있던 손

어이, 하며 저쪽 철골 위에서 환하게 흔들던 손

야, 임마 하며 반가워 손아귀를 꽉 쥐면 얼얼하던 손

H빔 위에서 떨어질 뻔한 내 등을 꼭 붙잡아주던 그 손

마른 침을 삼키며 화투장을 돌리던 손, 마른 빵조각을 앞에 두고 기도하던 손,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던 손, 멱살을 움켜쥐던 손, 책장을 넘기던 손, 손가락질하던 손, 도마질을 하던 손, 얼굴을 감싸쥐던 손, 물에 빠져 내밀던 손, 프레스기계에 먹힌 손……

움켜쥔 손, 펼친 손, 오므린 손, 쥐는 손, 두들기는 손, 때리는 손, 세는 손, 집는 손, 감싸는 손, 잡는 손, 흔드는 손…… 이 천변만화하는 손의 표정을 어떻게 다 기록할 수 있으랴. 살아온 이력과 타고난 성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손.

버스 손잡이가 더럽다고 쥐지 않던 손을 나도 본 적 있다. 끈적끈적한 땀이 싫다고 악수를 꺼리던 손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차가운 세상에 더운 피를 돌게 하는 것은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끼어 있던 손"으로 얼얼하도록 손아귀를 꽉 움켜쥐던 '그 손'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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