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대구 중구청과 동성로 공공디자인개선사업 추진위원회는 '대구읍성 성돌 모으기' 캠페인을 벌여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동성로, 서성로, 북성로 등 익숙한 지명들이 옛날 대구읍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아는 시민들이 30%에 불과하다는 설문조사 결과(2007년 10월 대구시민 400명 대상)를 볼 때 이 캠페인은 단순한 성돌 모으기를 넘어선, 잊혀진 역사 되찾기였다.
역사문화 자산이나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도심재창조는 1990년대부터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 선진국에서 많이 추진돼 왔다. 발전-성숙기를 넘어 쇠퇴기에 접어든 도시들이 황폐한 건물을 철거하고, 교외에서 주택개발을 진행하면서 무분별한 도시확장과 도심공동화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선진도시들은 어떻게 성공했나?=영국 버밍엄은 18세기 후반부터 급성장한 대표적 산업도시. 그러나 1960년대 산업구조 전환과 함께 빈부격차 확대, 실업자 증대, 슬럼화 등 도시문제가 불거졌다. 1998년 관료주도형 도시재개발에 대한 시민사회 비판이 강해지자 시의회는 '인간중심의 도심재생전략'을 추진했다.
핵심은 도심에 자동차 진입을 금지해 보행자 중심 가로로 정비하고, 시립미술관을 정비해 '문화창조공간'으로 조성한 것. 물류기능을 담당하다 버려진 운하를 정비해 '운하관광'을 추진하고, 오래된 창고 등은 레스토랑과 호텔로 개조했다. 소규모 예술단체나 개인 예술가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작업공간도 제공했다.
스페인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로 새롭게 태어났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뉴욕에 본관을 가지고 빌바오, 베를린, 라스베이거스에 분관이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술관 자체의 글로벌 전략을 이용해 실현된 것으로, 국제 현상공모를 통해 미국 건축가 게리가 설계를 맡았다. 빌바오의 특성을 살리는 하나의 랜드마크로 인식된 구겐하임 미술관은 연평균 입장객이 100만명을 넘고 그중 45%가 외국인이다. 그 경제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볼로냐가 주목받고 있다. 역사적 시가지 보존과 재생을 위해 문화이벤트인 '볼로냐2000'을 행정기관, 상공회의소, 대학, 예술단체, 시민이 협력해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문화공간을 도심에 창출하기 위해 1천700억리라를 투입해 콘서트, 전람회, 컨벤션 등 이벤트를 마련하고 문화시설을 정비했다. 옛 주식거래소는 이탈리아 최대 멀티미디어 도서관으로, 옛 담배공장 자리는 시각예술과 연극을 위한 창조공간으로, 소금저장창고·제빵점·옛 극장 등도 전통 장인들의 일터와 젊은 무대예술가들 작업공간으로 변신했다.
◆역사문화 자산을 시민의 품으로=대구 도심은 400년간 경상도 지방의 중심이었고, 지금도 상업과 문화활동 중심지로서 그 중심성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대구도심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지역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근대 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근대문화유산(134개소)의 47.8%가 도심인 중구에 위치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의 경우 18개소 중 17개소가 도심에 위치해 있다. 또 전국적으로 유명한 약전골목, 떡전골목(염매시장), 뽕나무골목, 화교거리, 진골목 등 아직 옛 선열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거리들이 남아 있다.
도심 역사문화 자산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대구읍성 주요시설 복원' '경상감영객사 복원 및 전통문화거리 조성' '달성토성 정비' '근대문화골목 디자인 개선' 등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순히 옛 것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전통 역사문화 자산이 현재 시민들 삶 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 어떻게 소프트웨어적 프로그램을 마련하느냐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의 고택을 복원해 문을 걸어잠그고 보존할 것이 아니라, 상화고택이 문인들의 활동공간이 되고,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대구정신'을 가르치고 보여주는 성지로 발돋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가 현재와 미래를 만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구도심 역사문화 자산에 대한 과대평가도 경계해야 할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옛 것을 복원해 놓으면 그 자체로 외국인이 몰려드는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는 '환상'과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계명대 사회학과 김혜순 교수는 "일부 지역인들이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 역사적 흔적들이 냉정한 외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저그런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면서 "우리에게 소중한 역사문화 자산이 외부인에게도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뭔가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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