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태아 성(性)감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가 성감별 고지 금지 조항이 사실상 위헌임을 인정한 것으로, 2010년부턴 임신 후반부에 성별을 알 수 있게 됐다. 의료계에선 비록 늦었지만 현실을 인정한 판결이라고 반기는 반면 여성·종교계는 '낙태'를 부추길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대 변화 및 현실 인정-환영
의료계는 "태아 성감별 금지 조항이 현실성이 없었던 만큼 시대 변화를 받아들인 이번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요즘엔 태아 성별을 미리 알아 출산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꿈을 만들어가는 과정인데 성감별 고지 금지는 부모의 자유와 행복을 제한한다는 논리다.
실제 상당수 산부인과 의사들은 임신 7개월이 넘을 경우 태아 성별을 환자에게 귀띔해주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과의 괴리를 없애는 조치라고 환영했다.
미래여성병원 김경열 원장은 "낙태가 힘든 임신 후반부에는 성별을 알려줄 수 있도록 한 결정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판결"이라며 "성감별 고지 기준은 사회적 통념에 따라 만들어 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규옥 변호사도 "이번 결정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실질적으론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라며 "산부인과 의사와 부모를 모두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었는데 지금이라도 개정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반겼다.
◆합법적 생명 경시-우려
그러나 여성·종교계의 반응은 차갑다. 부모의 알 권리가 태아 생명권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는 논리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지금까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성감별을 통해 낙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합법적으로 성감별을 고지할 수 있도록 하면 낙태 위험성이 더 커질 것"이라며 "아직까지도 일부 지역에서 남아선호사상으로 남초 현상이 뚜렷한 것을 보면 성감별 고지를 금지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했다.
정홍규 경산성당 주임신부도 "지금까지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태아 성감별을 통한 낙태가 적잖은데 이번 판결로 합법적으로 성감별을 고지하면 쉽게 낙태하는 길을 열어 주게 됐다"며 "이번 헌재 결정은 법적으로 생명 파괴 및 경시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예외적 허용은 필요-양자 인정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이날 "'의료인이 태아 성감별을 목적으로 임부를 진찰하거나 진찰 중 알게 된 성별을 본인이나 가족에게 알려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의료법(제20조 2항)을 내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하고, 그 때까지는 잠정 적용하라"고 선고했다. 헌재가 이번 판결을 내리게 된 것은 낙태가 사실상 불가능한 28주가 지나면 성별 고지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더라도 성별을 이유로 낙태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입법 당시에 비해 남아선호 경향이 완화됐고,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성별 고지를 금하는 것은 지나친 대처라는 것.
성감별 고지 금지 조항은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를 막아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고 태아 생명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1987년 제정됐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